명장의 재림도, 초짜의 돌풍도 실종이다. 시즌 초반 하나같이 고전 중이다.
올 시즌 프로농구 10개 구단 중 4개 구단 사령탑이 새롭게 바뀌었다. 창원 LG, 서울 SK, 서울 삼성, 고양 오리온스다.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순위표 아랫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라운드가 채 끝나지 않은 시즌 초반이지만 공교롭다.
LG는 지난 3시즌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던 강을준 전 감독을 대신해 김진(50)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2001~2002시즌 대구 동양(現 오리온스)을 최하위에서 통합우승으로 이끌었고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남자대표팀을 20년 만에 정상에 올린 명장이다.
시즌 전 '트라이앵글 오펜스'라는 야심찬 전략을 준비해 변화를 이끌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다. 31일 현재 3승4패로 공동 6위. 승률이 5할도 되지 않는다.
에이스 문태영(33)이 건재하고 국보 센터 서장훈(37)에, 검증된 외국인선수 올루미데 오예데지(30)까지 합류했지만 기대 이하다. '서·태·지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 4개 구단 중 그나마 가장 나은 성적이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SK는 문경은(40) 감독대행 체제로 시즌을 맞았다. 전문가들의 예상에서 10개 구단 중 최하위로 꼽혔던 SK다. 알렉산더 존슨(28·SK)의 존재가 불행 중 다행이다.
존슨을 중심으로 한 폭발적인 공격력은 변함 없지만 집중력 부재,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여전하다. 경기당 80점을 넣어 3번째로 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렇지만 평균 85.7점을 내줘 수비력도 꼴찌, 불균형이 심각하다. 이기지 못하는 '닥공 농구'다. 2승5패로 8위다.
문 감독대행은 경기력은 차치하더라도 비시즌 동안 선수들의 정신자세를 다지는데 집중했다고 했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 선수들을 이끌고 지탱해 줄만한 리더의 부재가 아쉽다. 한 번 무너지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유다.
김상준(43) 삼성 감독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중이다. 중앙대 감독 시절, 52연승을 구가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김 감독이지만 프로에서 고전하고 있다.
외국인선수 피터 존 라모스(26)는 들쭉날쭉한 경기력으로 애물단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고 주전 포인트가드 이정석(29)은 왼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사실상 시즌을 접었다. '제대로 된 가드와 센터만 있어도 승리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 두 자리가 불안하다.
경기 후반 들어 선수들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점도 골머리를 앓게 한다. 김 감독은 당초 정규리그 54경기에서 풀코트 프레스 전술을 활용하려고 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대학과 달리 프로 선수들은 패스 몇 번이나 개인기로 풀코트 프레스를 무력화할 선수들이 많다.
애초에 삼성 선수들이 김 감독의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될 지도 미지수였다. 일부에서는 "김 감독의 훈련량이 지나치게 많아 경기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정석의 부상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삼성은 2승6패로 9위다.
1승7패로 최하위인 오리온스는 지난 28일 SK를 제물로 힘겹게 마수걸이 승리를 챙겼다. 추일승(48) 감독이 과거 부산 KTF(現 KT)에서 단단한 조직력 농구로 승승장구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모양새다.
항상 연구하는 지도자 추 감독의 조직력 농구가 오리온스에 녹아들 것으로, 때문에 조심스레 6강 후보로 오리온스를 꼽는 이들도 다수였지만 예상 밖이다.
크리스 윌리엄스(31)라는 전천후 플레이어가 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의존도가 너무 높다. 골밑은 수비에서 무주공산이다. 토종 빅맨의 중요성을 예상해 이승현(29)을 영입했지만 재활 중에 또 부상을 당해 복귀가 쉽지 않다. 이동준(31)이 버티지만 공수에서 보이지 않는 턴오버가 너무 많다. 흐름을 자주 끊는다.
가드 라인이 탄탄한 것도 아니다. 2년차 가드 박유민(23)의 성장세가 둔하고 믿었던 신인 최진수(22)도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추 감독이 구상한 농구가 나오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분위기다.
경기력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코트 밖에서 진행되는 구단과 김승현의 법정공방도 선수단에 오묘한 기류를 전한다.
여느 때보다 힘든 시즌 초반을 맞고 있는 4개 구단 감독들이 꺼내들 해결책은 있을까? 외국인선수 교체, 대형 트레이드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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