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다변화와 잠재 경쟁의 활성화

    칼럼 / 노대래 / 2012-03-06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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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대래 방위사업청장

    (노대래 방위사업청장) 아담 스미스는 기업활동을 시장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고 시장질서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익이 균형을 이루면서 형성되므로 특별히 고마워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정부 역할은 다른 사람이 불공정하게 이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기능에 일임하기 위해서는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경쟁적(rivalrous)으로 소비되고 배타적(exclusive)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기와 같이 사용료를 내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은 시장규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품은 아무도 비용을 부담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 공급이 아예 되지 않거나, 적정한 규제가 없으면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는 상품이다. 건강, 안전, 보건, 안보 등의 공공재가 여기에 해당된다.

    국가안보는 분명히 공공재다. 세금을 안냈다고 해서 안보서비스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없다.

    옆집에서 안보서비스를 받는다고 해서 내가 받는 안보서비스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면 방산물자도 공공재인가? 그렇지 않다. 안보라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물적 수단일 뿐이다.

    그 물적 수단의 유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안보에 중대한 결함이 생길 수 있어서 정부가 개입하고 있을 뿐이다. 국민건강은 공공재지만 의약품은 시장재인 것과 같다. 의약품은 오남용의 위험 때문에 가격과 공급질서를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방산물자는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고, 정부는 조달원 등록제나 방산물자 지정제도 등을 통해 이를 실현해 왔다.

    냉전시대에는 방산물자의 국제적 거래가 강하게 규제되었기 때문에 국내공급능력의 확보가 자주국방의 징표였다. 그러나 지금은 원자력공급그룹(NS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Wassenaar체제에서 규제하는 위험물질 및 핵심장비를 제외하고는 국제거래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굳이 공급망을 국내에 한정시킬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외국의 방산기업들도 전투기, 함정, 전차 등 거의 모든 부품을 글로벌 소싱하고 있다.

    우리도 높은 비용을 들여 국내 공급망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특히 공급망이 국제적으로 형성된 품목은 더욱 그렇다.

    국가안보에는 필수적이나 국제거래가 자유롭지 않은 전략물자는 비용이 들더라도 국내 공급망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당장 방위비를 줄일 상황은 아니지만 재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망의 우선순위 책정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일본까지 무기시장에 뛰어들은 이 시점에서는 우선순위가 높은 곳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국내 공급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독점과 수의계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도입한 제도들도 많다.

    방산물자지정, 원가실비정산, 개산계약제도 등이 그것이다. 비공개 정보가 많은 것도 커다란 약점이다. 정보 접근력이 경쟁력처럼 여겨졌다.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이 크기 때문에 시장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고, 불확실성(uncertainty)이 커진다. 제도 설계가 잘못된 탓도 있지만, 원가를 절감하는 것보다는 원가를 부풀리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 되는 반시장적 행태까지 나타났다.

    불확실한 원가정보가 역선택(adverse selection)을 유발하고, 위장정비 등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도 아직 남아있다. 불확실성, 역선택, 도덕적 해이를 줄여 나가야 한다.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공급망을 다변화해서 경쟁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1품목 1업체로는 품질과 가격의 적정화를 기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간 독점으로 보호해 오던 산업을 하루아침에 경쟁으로 내몰아서는 기업이 견뎌내기 어렵다.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려는 당초 목적과 달리, 자칫 정책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5년 정도의 개선스케줄을 미리 정해 연차적,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는 산업정책적 측면에서의 심층 분석과 방산업계, 이해관계집단 등과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 다만, 국내시장이 좁아 국산화가 오히려 비용을 유발하는 품목은 국산화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격경쟁력 확보가능 품목, 전략적 필수품목 중심으로 국산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잠재적 경쟁(potential competition)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방위산업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잠재적 경쟁까지도 부인되어 왔었다.

    일단 방산품목으로 지정되면 그 품목은 평생 없어지지 않으며, 같은 품목으로 지정받는 경쟁자가 생기지 않는 한 수의계약이라는 특권은 계속 된다. 기업이 자체개발하여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연구개발 확인서’를 받으면 5년 동안의 수의계약 특권을 누린다.

    일반 기술보호제도인 특허제도로 환원해서 시장침해효과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한편, 특권을 부여할 때는 의무를 동시에 부여하여야 시장기능이 살아난다. 방산분야에는 권리를 부여하면서 의무는 조건으로 부과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권을 받은 기업은 잠재적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동원한다. 후발주자는 이 장벽을 뚫기가 어렵다.

    따라서 특권회수조건이나 한도를 설정해야 잠재적 경쟁이 가능케 된다. DQ마크도 어떤 기준을 위반했을 때는 효력을 정지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방산지정 제도도 마찬가지다.

    부정당 제재를 받으면 지정을 철회한다든지, 다업체 지정제도로 전환한다든지 하는 의무규정이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군비축소가 현실화되었고, 방산분야에도 뉴 노멀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방산기업은 생존력을 키워야 한다.

    살아남는 기업이 경쟁력있는 기업이다. 경쟁에 적극 참여하는 업체에게 R&D를 지원하고, 성능을 확인해 주는 정부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설계단계부터 양산까지 엄격한 품질검증을 거쳐야 성능확인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경쟁력 강화, 정부 역할의 명확화, 해외수요의 국내화가 이뤄지고, 또 하나의 신성장 동력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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