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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 서강대 교수) MBC의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최장기 방송파업의 역사엔 못 미치지만 연이어 벌인 파업의 여파로 MBC 종사자들의 체감 피로도는 극도로 높은 편이다.
출구 전략을 입에 올리기도 하지만 ‘사장 퇴진’을 내건 상황에서 마땅한 전략을 찾기도 힘들다. 구성원들의 의지가 강한 만큼 그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고, 내부 전의도 굳건하긴 하지만 그를 좋은 상황으로만 평가할 순 없다.
좋은 내용의 방송을 볼 권리도 엄연히 존재하고 광고를 하는 쪽과의 계약도 성실히 이행해야 하는 책무도 있기 때문이다. MBC의 파업이 단순히 노사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에 아직은 시민들이 지지하거나 인내하고 있어 권리와 책무의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뿐이다.
3월 19일이 지나면 MBC의 방송 내용도 많이 달라지게 된다. 그 동안 비축된 분량도 떨어지고 대체 인력으로도 한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력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외면할 수만은 없다. 고액 소득자라며 철없는 손가락질 하는 쪽도 있지만 종사자들도 엄연히 급여로 생활하는 생활인들이다.
해고를 당하거나 정직을 당한 쪽에 비하면 그나마 낫지만 두 달 가까이 수입없이 살게 되면서 겪는 어려움은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다.
경영진은 그에 맞는 노림수를 노리겠지만 종사자들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 만큼은 외면할 수 없다.
사장은 ‘관’ 운운 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불퇴전의 용사처럼 버티고, 자신의 임무가 ‘노영방송’의 정리임을 분명히 한 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리 밑에서 반발하더라도 자신의 위치는 ‘조인트’의 본고장에서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MBC 문제 해법이 쉽지가 않다.
김재철 사장이 등장하면서 노렸던 가장 큰 목표는 MBC 문화 부수기였다는 생각이다. MBC가 지닌 조직 문화전반을 바꾸겠다는 생각이 그의 발언 곳곳에서 묻어난다.
‘노영방송’을 내건 것은 ‘조인트를 깐 곳’의 주문이었다면 구체적 액션 플랜으로 드러난 것은 조직 문화 흔들기였다. 2000년 후반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MBC는 타 지상파 방송사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조직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를 느슨하면서도 창의성을 챙겨주는 조직문화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런 조직문화는 내부 구성원들을 ‘내 사람’으로 챙겨주는 정신으로 이어지고, 가끔씩 ‘뻥’ 터트리는 한 방이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결되는 조직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김재철 사장은 그게 싫었던 것이다. 그것을 부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조인트’를 까일 거라는 생각을 했음직 하다. 그래서 좌충우돌 조직 문화 부수기에 들어갔고.
김사장의 좌충우돌이 아직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가 편 사업들(예를 들면 K-Pop 방송)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오히려 번번히 무능의 지표로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자기 맘대로 자신의 사직서를 던졌다 받았다 하는 꼴도 우습다. ‘숙박왕’ ‘소송왕’ ‘코스프레’ 등의 별칭에 걸맞는 행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는 일은 번번히 바닥을 기고, 건강하던 조직 문화엔 기를 쓰고 메스를 대려하고, 공영방송의 공금을 펑펑 ‘개인적인 일로 보이는’ 곳에 쓰고 있으니 경영자로서는 빵점짜리임에 틀림없다.
그가 챙기는 수하들에 의해 이뤄진 편파방송이나 침묵방송에 대해선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므로 언급을 하진 않겠다. 종사자들은 지금 방송 저널리즘을 망친 데 초점을 맞추지만 나는 이 글에선 경영자로서의 김재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따름이다.
MBC 사장은 임기를 가진 소위 ‘바지 사장’이다. 그의 경영성과에 따라 업무 평가를 받아 때론 연임을 하기도 하는 그런 자리다.
그런데 경영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 사장에 대해 지배구조 체제상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에서 침묵하고 있는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별감사를 청구할 수도 있고, 문책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방문진이 침묵하는 일이 수상스럽기까지 하다. ‘바지 사장’이 질책도 우습게 넘겨 버릴 정도로 위치가 전도되었다는 느낌이다.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없어 나의 염려가 기우일 수도 있겠으나 표면상으로 방문진은 설득력이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세 사장이라 그런가? 그들도 ‘조인트’를 걱정하고 있나? 여전히 이를 노사문제로 바라보고 김사장과 방문진이 한편, 그리고 노조를 다른 편으로 보고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배임’이라는 단어를 떨칠 수는 없다.
혼자 생각이 틀릴 수도 있어 <방송문화진흥회 20년사>를 들추어 보았다. 1996년 3월 강성구 사장 임명을 두고 노조에서 파업을 벌인 사건에 눈이 갔다.
노조는 방문진과 끊임없이 대화했고, 4월에는 적정 합의에 이르기까지 했다. 이후 강성구 사장이 자진 사퇴하고 이득렬 사장이 선임된다.
방문진이 노조의 이의 제기에 모두 동의하거나 사장 퇴진에까지 동의하진 않았지만 이곳 저곳에서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할 노력을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책 320쪽에 강성구 사장의 퇴진을 요청하는 노조에 대해 당시 방문진 이사회에서 낸 성명서가 실려 있다. 일부분을 인용해보자.
“...... 방문진에서 새로 선임된 강사장은 노조가 지적한 대로 개인의 사생활로 인하여 공인으로서 자격에 문제가 없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편, 파업을 푼 노조 역시 노조만의 이해를 떠나 MBC 전체의 발전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기대합니다. 경영권은 노사협의의 대상도 아니며, 경영권이 확보되지 않은 회사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사태에 대해 방문진은 그 책임을 통감하며,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자 합니다. 경영진의 선임에 대한 기준과 방법을 새롭게 제도화하고 MBC 구성원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앞으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있어서도 또한 있을 수도 없는 일임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는 노조와 방문진이 합의한 내용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 형식이었다.
당시의 방문진이 지금의 방문진보다 훨씬 더 민주적이거나 전향적이었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곳곳에 자책과 노력의 흔적들이 있었음을 부정키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의 사태에 대한 방문진의 ‘모르쇠’는 절망스럽기 짝이 없다. ‘배임’을 운위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다. 한미 FTA 협정 발효로 국민들의 우려가 심화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웃 일본에서의 재난을 바라보며 남의 일 같지 않아 위기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불확실성에 파묻혀 시민들은 안방 채널을 들여다 보는 대신 스마트기기나 인터넷을 접근하는 노고를 기울여 불확실성을 제거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인들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분연히 일어나 더 나은 방송을 외치는 일이 반가우면서도 방송의 공백을 한편으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15 년 전에 발표된 성명서를 낸 방문진이 지금 방문진의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때 보다 더 진전된 기구가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해 어린 아이들에 물어도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그런데 ‘관망’이나 ‘모르쇠’라니 참담할 따름이다.
‘있어서도 또한 있을 수도 없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음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하루 빨리 방문진이 나서서 특별감사를 실행하고 경영인의 공과를 점검, 평가하고 그에 합당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신이 출자한 방송사업자의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 기능이 주 임무임에도 책임통감이 없거나 점검과 평가를 늦춘다면 방송 역사에서 씻기 힘든 ‘배임’을 행하는 일임을 절감해주길 바란다.
출처 :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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