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여러분과 제가 구원 받았을 때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 죄가 용서되었을 뿐만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에서 11장까지 구원에 대하여 논하고 난 뒤 12장부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하여 말하면서 강력한 권면으로 12장의 서두를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때 진정한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며 , 합당한 봉사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지 아니하고 헌신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될 때 그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저는 본문을 통하여서 롯을 바라다보고 헌신하지 아니한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치르게 되는 대가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롯은 신약성경에서 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을 읽어보면 그는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그를 의인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의 구원을 의심나게 하는 여러가지 정황이 있기도 합니다. 그는 헌신 되지 아니한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치르게 되는 값을 미처 생각지 아니했던 대표적 인물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롯이 구원 받은 의인이었다고 말합니다.(벧후2:7~8)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증거도 신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압박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소돔은 도덕적으로 퇴폐한 도시였다. 부한 도시이며 정욕을 추구하고 자기방종의 생활방식을 추구 하는 도시이었다. 동성연애가 일반이었다. 오늘날 술어로 말한다면 성매매를 하는 모텔, 안마시술소, 퇴폐노래방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김**와 같은 아동성폭행을 하고 살인하는 무리도 있었을 것입니다. 악이 팽배한 도시였다.(본문13:13) 그 곳에서 롯은 의인이었다. 마치 바벨론에서 ‘다니엘’처럼, 아합의 집에서 ‘오바댜’처럼, 네로 궁전에서 ‘성도들’처럼, 롯은 소돔 성에서 의인이었다. 음란하고 불법한 행실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마음에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다윗처럼 상한 심령이었을 것입니다.(시119:136,158) 또한 사도바울이 자기동족, 자기민족을 볼 때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다고 말한 말씀이 연상케 되는 것 같은 심정도 있었을 것입니다.(롬9:1~3)
베드로후서에 보면 ‘날마다 ’롯은 그의 의로운 심령이 상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구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되어가는 것을 보고 날마다 심령이 상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께 헌신된 모습이 보여지질 않습니다. 롯은 제자의 도에 입문한 성도는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시말하면 그를 볼 때 하나님 쪽으로 갈라진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성별된 삶을 살고자하는 그런 삶의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애 목적을 붙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드려진 삶이 아니라 세상과 영합해서 자신의 안락을 추구했던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천국은 믿지만 천국을 사모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 땅의 것에 집중하고 위의 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계관을 지니지 않습니다. 주 예수를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랑의 섬김이나 희생은 없습니다. 세월이 짧다고 믿었지만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가 있다고 믿었지만 서서 구경하는 자와 같습니다. 영적이 싸움이 있다는 것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에게 없었습니다.
롯의 출생지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그 당시 우르는 고대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로 인구가 최소한 25만 명으로 추정되며 가장 발전한 세계 중심 도시이었다. 역사가에 의하면 우르의 집들은 바벨론의 큰 도시의 집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훌륭한 집들이었다고 합니다. 우르는 종교도시로 “달”을 예배하는 중심 도시이었다. 롯의 사촌 아브람(후에 아브라함이 됨)도 우르에 살았다. 아브라함은 친자가 없었으므로 롯의 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 롯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우르에서 떠나라 하셨을 때 롯도 따라가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아마 온 세계를 얻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창13:5~7)
다툼이 생긴 것은 고난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번영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때로 하나가 되게 하지만 반면 번영은 종종 다툼을 유발하는 경향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창13:8~9)
아브라함은 롯이 원하는 것을 택하게 하였다. 우리는 도량 있는 아브라함의 태도를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롯의 선택은 의미 없는 단순한 선택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으로 그의 생애를 다른 길로 가게 하는 계기가 되게 하는 사실을 롯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그 결과가 따릅니다.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배우자의 선택, 직장의 선택, 거주지의 선택 등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너그러운 제의가 있고 난 후에 롯이 어떤 선택을 하였는가를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창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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