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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 문화평론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마침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는 철공소 운영자나 밀링 선반공들이 항의해야할 영화다.
선반이나 밀링을 하는 이들은 모두 빚쟁이다. 팔을 잘라 보험금을 타야 아내와 아이에게 밥을 먹여줄 수 있을 지경이며, 평생 그것을 한 결과는 빚과 죽음이다.
영화 <피에타>를 보면 모두 그렇다.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일들을 한국인들이 아직도 붙잡고 있는 현실이 이채롭다. 아니 그건 현실이다. 현실을 드러내주므로 항의만 할 수도 없겠다.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현실을 다시금 인식시키고자 하려는 것일지 모른다.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위험하고 빈곤한 철공 일을 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더 비참한 것이 있다. 김기덕 감독은 이를 예술이라고 한다. 이제 예술가들이 항의해야겠다. 이런 비참한 철공소보다 더 빈곤하니 말이다. 음악을 하면 더 비참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한 노동자는 마지막으로 기타를 연주하고는 스스로 팔을 잘라 아기를 위한 돈을 마련하려 한다.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번창하는 것 그 이면을 말하는 듯싶다. 음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절대 빈곤을 겪는 이들, 이들은 오디션에 나올 수도 없는지 모른다. 당장에 밥 한 끼가 아쉬운 그들에게 음악은 성공의 수단이나 좀 더 행복한 삶으로 향하는 길도 아니다.
앞서 언급 했듯 아마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선반공과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반공 청년들이 항의해야할 영화지만 더 가난한 음악가들은 더 결혼하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기타를 잘 치는 음악가 지망생은 결혼을 했다. 정작 가족도 없는 사채 폭력배는 남을 폭력과 위협으로 남을 불구로 만들고 결혼도 못했으며 가짜 가족에 속아 목숨을 내놓는다.
그가 음악만 했어도 그렇게 각종 패악을 저지르고 많은 이들의 몸을 못 쓰게 하고, 목숨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예술 영화를 만드는 이 작품의 감독은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장을 받았다. 그러니 선반공보다 결혼을 할 확률이 클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도 성공하고 행복한 철공소와 선반공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밀링 선반으로 기름밥을 먹는 그들에게 빌붙어 있는 이들은 사채업자들인데 그들만이 정말 간악한 악당들이다.
여주인공은 사채업자와 사채폭력배를 복수대상으로 삼는다. 즉 사람에 대한 복수만이 난무하며 결국 모든 종결은 각 개인들의 죽음과 장애 그리고 불구이다. 누가 빚을 지거나 빚을 지게 되는 가난에는 개인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영화 <화차>에서는 부모의 빚이 딸에게 대물림되는 현실을 부각했다. 영화 <피에타>에서는 청계천 철공소들이 전반적으로 어려운 지경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것이 산업적인 사양성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들의 능력과 환경 탓인지 알 수 없다. 단가를 후려치는 장면은 개인들의 욕망과 편취를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기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둡고 무거운 그리고 답답하고 기름과 금속 가루, 위험한 기계들로 넘쳐나는 기계와 부속품 산업은 빈곤의 상징이자 실체로 보인다. 그럼 금융이나 정보통신, 문화 관광 산업을 하면 더 행복해질 것 같다. 법조인이나 금융인, 공무원, 의사와 결혼하는 게 최고이겠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향해야 할 방향은 다르다. 유럽의 경제위기에서 버틴 독일은 차세대 한국의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독일은 철저 하게 기능공들을 우선하고 삶의 안정이 가능한 임금을 지불한다. 교육도 철저하게 직업 교육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초정밀 기계와 제조업이 강하다.
이는 제도론적 입장의 경제학자들이 항상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조업의 기본은 부품 산업이고 영화 <피에타>에 나오는 수많은 부품 산업 노동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도 아직 30%이상이 제조업에서 국가 동력을 얻고 있다. 정보통신 기기들은 모두 부품과 제조업의 산물이다. 심지어 영화도 영상 기계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모두 그 해당 산업의 운영자와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차세대 리더들이 해야 할 것은 뜬금없는 직종들의 구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든든한 기본 토대의 산업을 어떻게 직업교육의 조기화와 안정된 수입을 통한 선순환의 노동력 확보와 유지의 확립으로 체계화할 것인가이다.
기능공들이 세계최고의 자부심을 갖게 하고, 개인의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국가적 노력을 할 때 사채 일수로 빚의 구덩이 속에 빠진 채 서로를 향해 돈의 악마 운운하며 비극적 종말을 예고하는 악다구니는 부차적이 될지 모른다.
출처 :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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