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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두 정당의 우두머리가 약속이나 한 듯 종군 위안부의 문제에 관해 ‘증거가 없다’는 등의 망언을 되풀이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지의 소산이라기보다 알면서도 시침을 떼는 일이어서 낮 짝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도의 후안무치면 세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였던 제2차 세계대전을 발발하게 한 전범(戰犯)들의 과오를 상찬하면서 뒤따르겠다는 이율배반이나 다름이 없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에 독도문제와 종군 위안부 문제로 울화를 지르던 와중에 이번에는 댜오이다오(일본식으로는 센가쿠 열도)를 국유화하겠다고 설치다가 중국 전역에서 반일감정이 폭발하면서 일본국 대사관이 위기에 처하고, 일본의 자동차 공장이 묻을 닫을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되자, 기고만장했던 언동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특사의 파견을 고려한다는 둥 끝없이 허둥거리는 이른바 왜색(倭色)의 본질을 여지없이 들어내고 있다. 일본국 정부나 정당들의 한심하고 빈곤한 역사인식을 한 눈에 들어내 보인 꼴이다.
19세기 유럽문화의 동진(東進)은 아시아의 문화를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로 강력하였다. 청나라는 1840년, 아편전쟁(阿片戰爭)으로 힘없이 무너졌고, 조선은 1866년, 평양의 대동강으로 거슬러 올라 온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 호’를 화공(火攻)하는 것으로 양이보국(攘夷保國)의 잘못된 기치를 세우게 된 것은 모두가 국제정세를 헤아리지 못하는 지도층의 무지가 자초한 비극이었지만, 유독 ‘명치유신’에 성공한 일본만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향한다는 거창한 깃발을 펄럭이며 만만한 이웃들을 무력으로 짓밟기 시작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을 기화로 중국을 침략하면서는 ‘남경대학살’이라는 천인이 공노할 만행을 저질렀고, 일국의 왕비(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과 함께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을 식민지화 하였다. 그 같은 야만적인 침략행위는 1945년 두 발의 원자폭탄을 얻어맞고 무조건항복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얼마동안 죄인을 자처하면서 쥐 죽은 듯이 지내더니 방대 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살기가 편해지면서 지금은 아예 내놓고 옛날의 망상을 되살려내려는 우경화의 깃발을 펄럭이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모두가 전후세대들이다. 그렇다면 1백 여 년 전과 같은 전철을 다시 밟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만에 하나라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결과는 참패로 끝날 것임은 군사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고, 같은 맥락으로 일본이 다시 무력으로 한국을 침공한다 해도 옛날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이같이 뻔한 결과를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이 모를 까닭이 없을 것인데도 한국이나, 중국 국민들에게 상처를 내는 말장난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무리 일본국민들의 단합을 촉구하는 구호라 하더라도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싸워서 이기질 못할 상대에게 말로만 깐죽거리는 행태는 뭔가 모자라는 아이들이 저지르는 행태여서 위험을 자초하게 된다.
아베신조 전 총리는 5년 전 총리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재임 중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자탄하였다. 멀지 않아 자민당이 집권하게 되면 그는 다시 일본국의 총리가 된다. 자, 어떤가. 이번에는 총리취임과 동시에 연미복을 차려입고 야스쿠니 신사로 달려가야 언행일치가 되지를 않겠는가.
심한 말장난은 국위를 손상할 것이라는 1천여 명이 넘는 일본 지식인들의 권고까지 있었는데도, 오불관격인 일본이 젊은 정치세력들의 의식수준은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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