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교육

    칼럼 / 신봉승 / 2012-11-04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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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봉승 극작가

    (신봉승 극작가) 자라나는 유소년들을 교육하기 위해 「천자문」, 「명심보감」, 「격몽요결」, 「소학」과 같은 명저가 교과서를 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 현명한 유소년 교육임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위에서 거론한 명저들은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내용들을 망라해 놓은 「사서오경」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시절부터 가장 아름답고, 소중하고, 또 가치 있는 내용들을 입에 올리면서 몸에 배게 한 배려가 유소년 교육의 핵이라면 선현들의 생각하는 참 교육의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

    참된 유소년 교육의 결과가 조선왕조와 같은 훌륭한 도덕국가를 만들어내는 기초가 되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인데도 21세를 살아가면서도 훌륭한 유소년을 길러내는 커리큘럼을 확보하지 못하는 오늘의 교육정책은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한심할 뿐이다.

    여기서 내가 경험한 비근한 예를 한 가지 들고자 한다.

    1930년대의 중반 이후, 일본제국은 조선반도의 유소년들을 일본국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하려는 프로젝트를 치밀하고도 정밀한 컬리큐럼을 만들어서 학교는 물론 사회곳곳에서 시행하게 하였다. 물론 강제로 시행하는 것이라,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아니하고 오직 하고 싶은 대로 밀고나갈 뿐이었다.

    예컨대 집에서는 조선말을 쓰게 하되, 일단 학교의 교문 안으로 들어서면 비명까지도 일본어로 내지르게 할 정도로 일본어의 사용을 강요하였고, 때가 전쟁 중이라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군가(軍歌)를 가르치고 부르게 하여 귀축미영(鬼畜米英 : 귀신 도깨비나 다름없는 미국과 영국)을 물리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강요하였어도, 그 군가의 가사는 언제나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하늘을 대신하여 불의(不義)를 친다‥·,

    이런 자긍심 넘치는 노래를 부르고 외치노라면 당연히 그런 현실에 동화되게 마련이어서 자라면 씩씩한 군대가 되어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등, 이른바 일본제국의 유소년교육에 흠뻑 젖어들었던 경험이 내게는 있다.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무조건 항복을 하였을 때 나는 13세짜리 초등학교 6학년짜리 소년이었다. 그로부터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6·25의 독족상잔, 4·19학생혁명, 5·16군사혁명, 유신독재를 체험하며 우리시대를 의미 깊게 살아왔지만, 내가 소년시절에 외치고 불렀던 일본군가 20편 정도는 지금도 자구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부를 수가 있다. 내 기억력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유소년 시절에 접촉하였던 지식의 편린들은 평생 동안 잊혀 지지 않고 기억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뿐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유소년 교육의 방향이 담겨져 있다. 일본국 식민지치하의 유소년 교육이 이루어낸 성과를 일본제국이 구사한 커리큘럼이라고 비하는 것은 유소년 교육의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의 잠 고대나 다름이 없다.

    유소년 교육의 방향은 국가정체성을 기본으로 하는 국가발전의 방향과 같아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유소년들에게 우리민족이 나아가야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거기에 부응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것이 잠시도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깊이 인식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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