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박근혜 정부

    칼럼 / 이상돈 / 2013-05-27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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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지 100일이 됐다. 흔히 새 대통령이 야당 그리고 언론과 밀월을 갖는 ‘기회의 창구’(window of opportunity)는 100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첫 100일 동안 새 대통령이 꼭 해야 할 일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 ‘기회의 창구’를 헛되이 보낸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수위원회부터 시작된 윤창중-이동흡-김용준 인사 파문으로 인해 취임하기도 전에 피로감을 자아냈고, 이어서 대북 문제가 모든 것을 집어 삼켰기 때문이다. 정상화의 길을 가는가 했더니 윤창중 사건이 또 다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박근혜 정권을 어떻게 보는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노무현-이명박 정권 10년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마치 1972년 유신부터 1992년까지 20년이 김영삼-김대중 정권을 만들어 냈던 것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나 ?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새누리당 후보라면 누가 나와도 그 후보를 찍을 사람들이다. 이른바 보수 콘크리트 유권자인데, 서울시 주민투표나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 골수층이라 하겠다. 나머지 50%는 박근혜 후보이기 때문에 대선에서 1번을 찍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개중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안정적인 개혁과 쇄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지한 사람도 많았다고 본다.

    선거나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양쪽에 있는 각각 25%를 제외한 중간에 있는 50%가 좌우하기 마련이다. 또한 이들이야 말로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보통사람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통합도 결국 이 50%의 마음을 사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취임 100일 만에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7월 초에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두 개의 약속을 내걸었는데, 첫째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이고, 둘째는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이다. 대선 본선에선 국민대통합과 정치쇄신을 내걸었지만 나는 대선 출마선언에서의 약속이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는 불확정 개념으로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줄푸세가 만능의 약이 아니듯이 경제민주화도 만능의 마법사는 아니지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경제정책은 그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1995년에 국민소득 10,000 달러를 달성하고 지금은 20,000 달러 시대에 있다고는 하나 소득 격차가 너무 벌어져서 이런 숫자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소수의 상위계층이 부(富)를 많이 갖고 있는 현상은 미국, 서유럽 등에 보편적이지만 유럽보다 미국이 심하며, 미국 보다 우리가 심하다. 이런 상황에 이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명박 정권 하에서 있었던 노골적인 대기업 편중 정책이 그런 현상을 심화시켰다고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최소한 이명박 정권 시작 당시로 균형의 추(錘)를 되돌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민주화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는 공공분야 개혁이다. 공공분야 개혁이 없이 대기업에 대해 양보와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에 직업 관료제를 확립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관료제는 국가의 앞날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 점은 세계 어느 나라나 같아서 나라를 바로 잡는 첫 단계는 관료제 개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 미국 대선에 나온 로널드 레이건은 “정부는 문제를 푸는 해결방안이 아니다. 정부는 그 자체가 문제다”라고 설파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공공부분 개혁에 나서서 공무원 관료를 관리하는 부처를 아예 없애 버렸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개혁에 지금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그야말로 박근혜 정부는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정부”가 되고 말 것이다.

    공공분야 개혁에서 또 중요한 것은 공기업 개혁이다. 우리나라처럼 공기업이 많은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다. 이렇게 공기업 많은 나라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미 시대적 소명이 끝나버린 공기업들이 퇴직 공무원 노후 대책용으로 변질해서 국민세금을 들이 마시고 있는 형상이다. 우리나라 공기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 공룡과 같은 부채 현황이다. 한 민간연구소는 우리나라 공기업의 부채가 정부 부채보다 규모 더 크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공기업의 부채 현황이 어떤지는 정확한 계산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정부 부채는 GDP의 50%에 미달하지만 여기에 공기업 부채를 합하면 우리나라고 부채 수준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 정부 부채가 과연 앞으로 지불할 연금과 건강보험금 등을 적절하게 포함시켰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정책적 과제 외에도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4대강 사업의 진실을 밝혀야 하고, 또한 원세훈 원장 재임기간 중의 국정원의 불법적인 국내 정치 간여를 밝혀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제 기로에 서있다. 원세훈 게이트와 4대강 게이트를 밝히고 공공분야를 개혁해서 국민이 모두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을 만드는가, 아니면 이명박 정권이 남겨놓은 게이트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대다가 공공부분이 방만한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 행복한 나라’로 가는 길에 접어 드는가, 그 둘 중의 하나이다. 이런 선택에 있어서 중간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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