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어떻게 바꿀 것인가?

    칼럼 / 이상돈 / 2013-07-08 16: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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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
    ▲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더구나 개인 비리로 수사를 받게 됨에 따라 국정원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음을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다. 나아가서 국정원이 이른바 NLL 문건을 갖고 대선과정에 개입했을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것들은 현행법 하에서도 중대한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국정원을 개혁하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국정원은 음지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업적이나 성공사례는 일반인이 알 수 없다. 다만 1986년 김포공항 폭발물 테러 사건, 1987년 대한항공 폭파 테러, 이한영 암살 사건 등은 정보기관의 실패 사례로 우리는 알고 있다.



    국정원과 그 전신인 중앙정보부 및 안전기획부가 10번, 100번의 이런 상황의 발생을 성공적으로 예방하고 단지 우리가 아는 이 같은 사건에서만 실패했는지, 또는 성공사례는 아예 없고 이런 실패 사례만 있는지,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이다.



    외부세력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국정원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켰는지, 또 해외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수집해서 우리의 대외 안보정책을 수립하는데 기여했는지를 잘 알지 못한 채 우리가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은 자체로서 한계가 있다. 만일에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국가와 국민을 외부적대세력으로부터 지키는 데는 완전히 실패하고 있으면서, 국내정치 간여와 국민감시에만 주력했다면 그것은 개혁 수준을 떠난 문제라고 본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같이 갖고 있는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선 드물다. 사실 이 문제는 오래 전에 해결됐어야 했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고, 또 보안 문제를 독자적으로 관리하면 내부의 반역자를 적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 CIA 요원의 반역행위를 적발한 기관은 FBI였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FBI에 상응하는 기관이 있나 하는 점이다. 수사권은 검찰이 갖고 있고 경찰은 검찰의 지시를 받지만 대검에서 공안부와 중수부 같은 조직이 이미 없어졌고, 검사들의 보직이 2-3년마다 바뀌는 실정은 문제라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검사의 본업은 기소라고 보아야 한다. 2012년 대선 때 모든 후보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기소와 수사의 분리를 약속했다. 또한 경찰은 자치경찰제를 도입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수사기능, 검찰과 경찰이 지금까지 행사해 왔던 중요 공안범죄 수사기능을 합쳐서 새로운 중앙수사기관을 창설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검찰 경찰 구조개혁과 함께 다룰 문제라고 하겠다.



    최근에 새누리당의 정몽준 의원과 이재오 의원도 이 부분을 언급했다. 다만 이명박 정권의 주류였던 두 의원이 자신들이 영향력을 한창 행사할 때에 이런 말을 했다면 더 좋을 뻔 했다.



    이른바 국내정보 수집이란 이름하에 행해지는 '국내파트'의 활동은 법적 근거도 모호하다. 더구나 국정원법의 '정치개입 금지' 조항을 보다 너그럽게 해석하면 국정원의 국내파트의 활동 대부분은 이미 법률 위반이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을 못하도록 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런 과정에서 있었던 불법적인 행위도 규명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하의 국정원이 4대강 사업, 한미 FTA 등 MB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자들에 대해 어떤 일을 했는가는 밝혀져야 하며, 또 그 책임자와 관련자들은 단죄되어야 한다.



    '국내파트'를 폐지한다고 해서 국정원이 해외적대세력의 국내활동에 대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CIA는 법적으로는 국내에서 활동을 할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활동이 불가피하다.



    9.11 테러는 미국 정보기관의 초대형 실패로 기록된다. 9-11 테러 후 나온 보고서는 정보기관 간의 협력부족이 9-11을 막지 못한 이유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9-11 테러를 막을 기회는 몇 번이나 있었고, CIA와 FBI 간의 경쟁과 비협조가 그런 기회를 상실케 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또한 두 기관간의 구조적 문제 못지않게 관련 책임자들간의 경쟁과 갈등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CIA와 FBI가 합쳐진 대형정보조직이 있었으면 9.11 테러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경쟁이 없는 초대형 부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다.



    FBI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한 미국인과 미국 시설에 대한 테러 암살 등 수사를 위해 외국 현지에서도 활동을 한다. 사우디, 에멘, 케냐 등지의 미국 시설에 대한 테러를 조사한 기관은 FBI였다. 정보수집과 수사는 원래 분야가 다른 것이지만, 큰 사건을 추적하는데 있어서 그 경계선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9.11 테러,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실패'였다. 알 카에다의 테러가 동아프리카, 중동에서 기승을 부릴 때 원래부터 국가안보에 관심이 적었던 클린턴 대통령은 섹스 스캔들 문제에 잡혀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자 백악관에서 테러 임무를 담당했던 리차드 클라크는 새로 부임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한테 "알 카에다의 위협에 대해 보고하겠다"고 했더니, 라이스는 알 카에다를 처음 들어 본다는 표정으로 다음에 보자고 했다고 한다. CIA 국장이 그해 8월에 테러위협에 대해 라이스에 보고했으나 라이스는 그것을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라이스는 동유럽 정치를 전공한 학자였다.) 얼마 후 9.11 테러가 발생했다. 나중에 백악관이 이라크 침공을 결심하자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확증이 없다는 정보보고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9.11 후 다시 신임을 얻은 태닛 CIA 국장은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정보기관을 국내정치의 도구로 사용했던 관행이 최근까지 남아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수도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해 북한 입장을 대변했다는 대통령 하에서 국정원이 제 구실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충실한 집사와 같은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대통령 하에서 국정원이 제 구실을 했다고 볼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국정원의 문제는 제도의 문제일뿐더러 '대통령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같이 국정원에 적임자가 앉아 있지 않거나, 미국처럼 백악관에 적절한 참모가 앉아 있지 않다면 국가 정보기관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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