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풀이와 치유

    기자칼럼 / 오현세 / 2014-05-09 12:5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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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현세 객원기자
    어른 말을 따르느라 속절없이 고혼이 된 아이들을 생각하면 애가 타고 화가 끓습니다. 애가 타면 속이 녹고 화가 나면 속이 탑니다. 녹고 탄 마음이 온전할 리 없습니다. 불구가 됩니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온 국민의 마음이 불구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사 그 자체보다 더 큰 참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애가 녹는 경우는 아직 상황이 끝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혹 한 목숨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을 때 애가 타며 녹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끊기면 녹은 애간장이 땔감이 되면서 불길이 솟기 시작합니다. 화(火) 입니다.

    속에서 불이 나니 당연히 온갖 사람들이 온갖 군데 대고 화풀이를 합니다.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러운 선장 이하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말단 공무원까지 사람은 물론 사회 제도 전반이 화풀이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또 말이 많습니다. 이러한 화풀이가 옳은 지 그른 지를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을 품고 있으면 사람이 재가 됩니다. 때문에 화는 풀어야 합니다. 화풀이가 꼭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 화풀이 과정입니다.

    히틀러는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 국민들의 가슴속에 녹아 있는 울화를 태우는데 유대인들을 희생물로 내놓았습니다. 과거 일부 정권은 실정에 대한 국민의 화를 엉뚱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풀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은 과연 나쁜 인간들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놀아난 사람들은 옳습니까!

    세월호의 맨 꼭대기에 있는 유모회장이 불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관련부처의 장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고 행정 시스템과 규정들이 난도질당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한 민간 잠수부의 고귀한 생명이 또 희생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왜 피를 보아야만 환호한 검투장의 로마시민들이 떠올랐는지 모릅니다. 그 시민 가운데 섞여 있는 나 자신을 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이 질식할 것처럼 가슴을 메웠습니다.

    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화풀이에 소용되는 희생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수많은 의인들의 희생을 통해 화를 풀어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 선생님은 나중에 갈 테니 너희 먼저 나가.’ 많은 제자들을 대피시키고 남은 학생들을 천국의 길로 인도한 최혜정(25), 남윤철(35), 고창석(40) 선생님. 끝까지 뱃사람의 긍지와 자세를 지킨 박지영(22), 정현선(28), 김기웅(28) 승무원과 양대홍(45) 사무장.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끝까지 친구들을 대피시키려 안간힘을 쓴 정차웅(17)군과 양온유(17)양. 수색작업 중 숨진 민간 잠수사 이광욱(53)씨. 이들은 모두 희생이 되었습니다.

    이들 말고도 남의 생명을 구하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희생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화풀이의 대상으로서의 희생이 아닙니다. 아픈 마음이 휘두르는 칼부림에 피를 흘리는 희생이 아니라 그 자신의 흘린 죽음의 피로 산 자의 아픈 마음을 보듬은 치유의 희생입니다.

    잘못은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 과정이 화풀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남을 구한 의인들이 있음에 우리 사회는 얼마든지 올바른 사회로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 희망만이 이번 참사의 화를 그나마 풀어 줄 수 있습니다. 이제 그런 희망이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다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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