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환 칼럼] ‘명량’의 이순신과 벤처 기업가들

    칼럼 / 이영환 / 2014-08-12 14: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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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환 건국대 교수
    ▲ 이영환 건국대 교수
    영화 ‘명량’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이 아직도 임진왜란 때와 다르지 않음을 개탄한다.

    이순신장군에게 일생 동안 겪은 수많은 전투 중에서 가장 싸우기 힘들었던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것을 꼽을까? 고작 십여 척으로 수백 대의 전함을 상대로 싸워야 했던 명량 해전도 아니고 장군이 자신이 전사했던 노량 해전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부의 적들과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수군이나 육군으로서 적과의 전투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장군은 막상 내부의 악한 무리들에게는 완패했다. 이들 무리들은 무능했지만 하이에나처럼 떼를 지어 그를 모략하고 비방하고 폄하하고 투옥하고 고문했다. 다행히도 우직하고 충직한 장군은 두 번의 옥살이 뒤에도 살아 돌아와 국운이 달린 고비에서 목숨을 걸고 국가를 지켜냈다.

    우리 나라의 벤처기업가들에게도 사업을 하기에 가장 싸우기 힘든 전투를 꼽으라면 외국 기업과의 싸움이 아니고 바로 국내에서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든 기업 현실이 아닐까?

    한국은 사기꾼과 정치인을 제외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유난히 돈 벌기 힘든 나라 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법 규제 문제도 있고, 무능하고 부패한 공무원도 있고, 대기업의 횡포도 있다. (한국의 이상한 법은 멀쩡한 기업인들을 불법을 저지르도록 강요하고 감옥으로 보내 재기 불능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므로 추후 칼럼에서 쓰려고 한다.) 그 중 가장 벤처 기업인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자본의 횡포다.

    한국의 벤처 캐피털들은 대부분 우량한 벤처 기업을 가치를 비상식적으로 낮게 후려친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한국 정부가 틈만 나면 자랑하는 ‘세계 최초’의 SNS 서비스 싸이월드다. 통상 하이테크 시장은 선도진입자가 우위를 차지하고 승자가 독식하는 형태를 보인다. 그런데 이런 하이테크 시장에서 잘나가던 ‘세계 최초’라는 SNS 서비스가 어쩌다가 저리도 비실비실 할까?

    싸이월드를 만들었던 창업자는 창업 4년 후인 2003년 싸이월드를 고작 50억원에 SK에 넘겼다. 빚만 털어내고 넘긴 것이다. 그 후 대기업의 자회사가 된 싸이월드는 중고등학생이 대부분인 고객들에게 도토리 팔기에 열중했다. 승자가 되기 위한 공격적인 경영이 필요한 벤처기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소위 ‘거지 똥구멍에서 콩나물 빼먹는’ 식의 사업을 한 것이다.

    이를 페이스북과 비교해 보자. 페이스북은 2007년 창업 4년 후인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사로부터 150억불(약 15조원)로 산정된 가치를 기준으로 2억4천만불(약 2400억원)을 투자 받고 1.6%의 지분을 양도한다. 싸이월드에 비하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투자를 받을 시점을 기준으로 이 두 회사의 비슷한 점은 둘 다 SNS 서비스 4년차였고 자본잠식이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인터넷 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둘이 다른 점은 한 회사는 한국 기업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있다는 것밖에는 없다. 이 둘을 비교하면 싸이월드 창업자는 SK에게 회사 자체를 거의 무상 헌납했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과거가치에 투자를 한다는 한국 벤처캐피털들만의 고유한 기업가치 산정 계산법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의 투자금액 즉 과거가치가 얼마였는지를 기준으로 “배수” 계산을 한다. 예를 들어 자본금이 오천만 원인데 오억을 투자하고 50% 지분을 양도하면 20배수로 계산한 것이 된다. 황당하게도 과거의 투자 금액 즉 과거가치 외에 미래가치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계산법은 창업자들에게 과거 투자금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이용하려는 벤처캐피털들의 꼼수다. 왜냐하면 보통 창업자는 돈이 아닌 피와 땀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과거 투자금액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벤처기업 공짜 먹기”가 가능하다.

    페이스북을 과거가치로 산정하려고 했다면 마이크로소프트 투자 당시인 2007년까지 고작 1700만불 정도가 투자되었을 뿐이었다. 이 때를 기준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가 겨우 1.6% 지분을 위해서 투자한 액수는 한국식으로 따진다면 거의 1000배수에 가깝다. 그 뿐이 아니다.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자신의 초기 투자금이 고작 수천 불 정도였고 오늘까지도 마크 저커버그가 주식을 28% 정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생각할 때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금은 초기 투자금의 배수로 따지면 수천만 배수쯤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배수다.

    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미래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교과서에서도 가르치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창업가들은 10배수 정도의 투자에 기업의 경영권을 넘긴다. 10배수는 보통 빚을 청산하는 정도의 자금이지 미래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벤처 기업가들에게는 크게 망하고 감옥으로 가든지 아니면 빚이라도 청산하고 넘기는 것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더 슬픈 것은 많은 창업자들이 감옥에 한 번은 갔다 와서 혹은 기업을 헐값에 팔아 넘기고 난 후 다시 벤처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해 봤자 안 되는 거 알잖아? 필자는 다시 벤처를 시작하는 지인들에게 한국에서의 새로운 벤처 사업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만류하게 된다. 고생만 하다가 잘되면 빚만 털 정도의 헐값에 넘기고 말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만류를 하기는 하지만 필자는 다시 도전하는 이들에게 “신에게는 아직 13척이 남아있습니다” 하던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보듯이 진하게 감동한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전쟁터가 있었고 전함 13척이 남아 있었듯이 이들에게 벤처라는 전쟁터가 있고 불태울 수 있는 인생이 아직 남아있다. 이 척박한 한국의 벤처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 중 몇 명쯤은 영웅으로 살아 남기를 기도한다.

    또한 이 땅에 과거가치에 투자하는 자본가들의 꼼수 계산법이 아닌 미래가치에 투자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계산법으로 바꾸는 시도를 누군가 시작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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