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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환 건국대 교수 |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령에 서명한 지 100년이 되던 1963년, 노예에서 해방은 되었지만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을 벗지 못하고 있었고 차별 받고 있었다. 남부 대부분의 주에서는 인종분리법에 의해 흑인을 경제적 교육적 사회적 법적으로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많은 흑인들은 이 같은 현실에 분노했고 변화를 갈망했다. 이 때 변화를 원하는 흑인들에게 행한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명 연설문은 두고두고 음미하면서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어느 날엔가는 바로 (사악한 인종주의자들이 있는) 그 알라바마주에서, 어린 흑인 소년들과 어린 흑인 소녀들이, 어린 백인 소년들과 어린 백인 소녀들과 형제자매로서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킹 목사는 인권 운동가들은 이 꿈이 이루어지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날까지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연설한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전제조건이 있다고 그는 지지자들에게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꿈인 “정의의 궁전”에 도달하는 그 날까지 범법자가 되지 말고 품위와 절제와 고귀한 수준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비통해 하지도 말고 증오하지도 말고 창의적인 항거가 물리적 파괴로 변질되지 않게 하자고 그는 권유한다. 이 연설문을 다시 읽으면서 세월호를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역사상 가장 큰 각성제를 주사했다. 이 각성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 구석구석 쌓인 부정부패와 무능과 태만을 척결해 버리기에 가장 좋은 기회다. 세월호 참사는 앞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겨서 기억되어야 할 것이고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 국가적인 부패구조 척결에 대한 종합적이고 영구적인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월호의 유족들에게는 킹 목사와 같은 리더가 없었고 그들에게는 김영오씨가 있었다. 김영오씨는 “품위와 절제와 고귀한 수준을” 잃었고 비통함과 증오와 분노를 욕설로 표출했다. 그가 분노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전혀 본질과는 관계도 없는 특히 대통령을 향한 욕설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었고 쓸데없이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논쟁으로 귀한 시간이 허비되는데 좋거나 싫거나 큰 역할을 했다.
더 황당하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대통령 창피주기에 올인한 국회의원들이다. 처음 국정조사 특위에서는 야당의 김광진의원은 녹취록에도 없는 대통령 관련 내용을 마치 있는 것처럼 조작을 해서 질의를 했다. 그게 빌미가 되어서 며칠간 공전을 하더니 이런 저런 파행을 하다가 국정조사 특위는 제대로 된 국정조사도 못하고 결론도 못 내리고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한 채 법정시한을 마쳤다.
국정조사 특위에서 의원들이 가장 몰두했던 것은 박대통령이 밝히지 않고 있고 (밝힐 이유도 없는) 일곱 시간의 행적이다. 여당 의원들은 그게 논란이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고 야당의원들은 그것을 파헤치려고 전력을 다했다. 그런데 그 일곱 시간을 파헤치면 세월호 침몰에 대한 원인규명이나 재발 방지 대책이 나오나? 국정조사에서 추구해야 할 본질적인 내용은 간 곳이 없고 대통령이 일곱 시간 동안 연애라도 했으면 창피를 주자는 것이 논란의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러더니 세월호 특검법 타결때문에 식물화된 국회를 정상화시키자고 만난 자리에서 설훈의원은 또다시 박대통령이 연애한 것이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는 발언으로 국회를 다시 한 번 파행시켰다. 세월호 특별법은 고사하고 국회에 밀린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든지 법에 의해 정해진 예산심의를 한다든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어떻게 하면 대통령을 창피 줄 수 있을까가 관심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국민들은 이미 세월호를 둘러 싼 알맹이 없는 논쟁에 충분히 염증을 느끼는 중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이 마지막 정점을 찍어버렸다. 유가족 대책위원회 간부들이 술에 취해서 대리기사를 단체 폭행했다. 세월호에 대한 원인규명이나 재발방지 대책은 또다시 뒷전으로 물러났다. 이제는 이들이 단체폭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한 진실규명으로 논란의 초점이 넘어가 버렸다. 아까운 삼백 명의 꽃다운 젊은이의 목숨을 잃고도 아무 것도 못하는 국회와 국가도 한심하거니와 세월호 참사를 당한 것이 무슨 권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스런 욕설과 폭력을 아무 때고 행사하는 유가족의 태도가 심히 아쉽다.
1963년 킹 목사가 그 지지자들에게 부르짖듯이 우리에게는 꿈이 있다. 그것은 부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부패하고 더러운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대로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삼백 명의 고귀한 생명이 담긴 이 꿈을 버릴 수 없다. 우리의 사회에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날까지 절대 만족하지 않고 세월호에서 희생된 영령이 다시는 이런 참담한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부패하고 부정하고 무능하고 태만한 세력을 척결해내는 정의의 횃불이 되기를 바라는 꿈을 버릴 수 없다.
부디 세월호 유족들은 범법자가 되지 말고 품위와 절제와 고귀한 수준을 잃지 말기를 권유한다. 비통해 하지도 말고 증오하지도 말고 자신들의 노력이 물리적 파괴로 변질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권유한다. 왜냐하면 비리척결은 세월호 유족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꼭 이뤄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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