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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길 논설위원 |
한 가정의 아버지, 남편이자 성실하게 해당 방송국에서 인정받아 온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성추행범으로 전락했는데도 해당 국회의원이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이라는 주장에 대해 선뜻 동의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과거 한국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면책특권은 야당의 특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야당이 항시 면책특권을 남용하고 그 뒤에 숨었고, 현 여당인 새누리당도 야당 시절 면책특권을 남용한 사례가 있었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여당은 그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면책특권 남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논의와 결과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제기되는 면책특권 남용에 대해 야당 원내대표는 마치 여당이 면책특권을 폐지하자고 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선량한 국민을 무시하고 우롱하는 지극히 잘못된 발언이다.
현재의 논의는 면책특권을 축소하거나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라 면책특권 남용을 막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고,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눈높이와 민심에도 부합한다.
헌법 제45조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특권이 규정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헌법에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으므로 헌법을 개정하기 전에는 면책특권 남용을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헌법에서 인정하는 면책특권은 면책특권이 인정된 역사적 과정과 헌법상의 다른 규정, 특히 인권과 관련한 규정과 관련하여 내재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헌법의 다른 모든 조항에 우선하여 인정해야 하는 절대적 규정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의원이 면책특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또 다른 헌법의 중요한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침해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지 않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힘 있는 정부와 권력을 향한 것이지, 힘없고 약한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는데 사용하라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규정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므로 제한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는 국무총리 임명 과정에서 헌법 그 어디에도 없는 인사청문회를 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즉, 헌법 제86조에 의하면 국무총리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는 것으로 충분하며, 국회에서 이를 위한 인사청문회를 하도록 되어있는 규정이 헌법에는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그 누구도 그 이유로 인사청문회법을 위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혹자는 독일 헌법 제46조 제1항에서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은 예외규정이 없으므로 면책특권을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일 헌법의 단서규정은 앞서 설명한 헌법의 내재적 한계 등을 명문화한 것에 불과하며, 비록 우리 헌법에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할지라도 면책특권의 내재적 한계와 다른 헌법 규정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 헌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비록 대한민국 수도가 서울이라고 헌법에 명시하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서울이 헌법상 수도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하지 못하듯이 야당일 때는 면책특권을 남용하고, 여당일 때에는 그 남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수레바퀴 돌아가는 정치권의 논쟁에 국민들은 지쳤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이번에 조응천 의원 때문에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한 MBC본부장이 나서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을 받아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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