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생각한다

    칼럼 / 공희준 / 2016-08-09 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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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곳이다. 미국은 영웅주의 국가다. 소수의 영웅이 다수의 대중을 이끄는 사회다. 민주주의와 영웅주의,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미국은 이 양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두 가지 개념을 성공적으로 조화시켜왔고, 그 덕분에 세계 최강의 나라로 오랫동안 군림해오고 있다.

    등소평(덩샤오핑)이 정권을 잡은 이래로 꾸준히 추진해온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 덕분에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라를 하는 G2 체제가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중국이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말았다. 단적으로 미국이 중국 바로 코밑에 설치하려는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가 그 증거이리라. 사드와 비슷한 무기 시스템을 중국이 미국의 뒷마당격인 카리브 해에 언제쯤 들여놓을 수가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턱밑에 대못을 박으려던 소련의 야심찬 시도가 참담한 실패로 끝나면서 흐루시초프는 크렘린에서 조용히 짐을 싸야만 했다.

    그렇다면 미국은 민주주의와 영웅주의를 어떻게 무리 없이 같은 그릇에 넣고서 맛있게 비벼먹을 수 있었을까? 비결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영웅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확장해가는 형태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꽃피워왔다.

    슈퍼맨은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상이다. 그래도 역시 미국인들에게 제일 사랑받는 보편적 영웅의 표상이라면 서부영화의 고전이라고 일컬을 ‘하이 눈(1952년 개봉작)’에서 게리 쿠퍼가 연기한 것과 같은 정의로운 보안관일 것이다. 슈퍼맨이든 보안관이든 모든 영웅은 고독하다.

    외롭기에 그들은 더욱더 강해져야만 하고, 그렇게 남달리 강해진 까닭에 영웅들은 내면의 착한 마음씨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이웃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영웅들은 공동체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들과 홀로 싸우기 일쑤다. 그 많은 악당들에게 ‘단독’으로 맞서서 승리를 쟁취하는 때야말로 그들이 진정한 영웅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순간이다.

    한국 영화의 관람객수가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성적을 압도하는 시대에, 더군다나 서부영화는 이미 오래전에 박물관에 보내버린 시대에 웬 뜬금없이 영웅타령이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식 영웅탄생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의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본질을 통찰할 수가 없다. 미국의 대선은 근본적으로 4년 임기의 영웅을 뽑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라. 1960년에는 케네디가 닉슨보다도 영웅처럼 보였다. 1980년에는 레이건이 카터보다도 더 영웅처럼 보였다. 아들 부시는 거칠구 투박했을지언정 전쟁영웅처럼 보인 데 비해 그와 싸웠던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비록 출세하고 성공은 했지만 별다른 카리스마가 없는 그저 그런 직업 정치인으로 보였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는 나름의 개인적 영웅서사가 뒷받침된 반면에 그들이 상대한 공화당 후보들은 평범한 샐러리맨들처럼 보였다. 미국의 선거는 정당선거이기 이전에, 정책선거이기 이전에, 정권심판을 위한 선거이기 이전에,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선거이기 이전에, 떼거지로 나타나는 지질한 악당들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통쾌하게 물리치는 강하고 고독한 영웅을 만들어내는 고도로 연출된 대서사시다.

    현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 다음번 백악관의 주인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힐러리가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류다. 게다가 힐러리 진영에는 현직 대통령 오바마, 전직 대통령이자 남편인 빌 클린턴, 뉴욕타임스와 CNN으로 상징되는 거대 기성언론, 그리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톰 크루그먼과 진보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 교수 같은 내로라하는 유명 지식인들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가세해 있다.

    겉으로 드러난 세를 무조건 중시하기 마련인, 발표된 여론조사 수치만을 막무가내로 맹신하기 일쑤인 한국식 선거독법으로는 승부는 이미 결정된 것과 진배없다.

    허나 미국식 영웅서사에 비춰보면 무리를 지어 덤벼드는 벌떼작전은 늘 악역들의 전유물이었다. 반대로 영웅은 언제나 혼자였다. 어쩌면 진짜 악당은 트럼프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가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속의 슈퍼히어로인 양 고독한 선거운동을,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동원해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트위터에 걸려 있는 그의 공식 선거슬로건은 매우 간명하면서도 대단히 미국적이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한국인이 정(情)에 의지해 살듯이, 미국인은 위대함을 먹고 살아왔음을 감안하면 오는 11월의 미국 대선이 힐러리의 낙승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대한민국 진보진영의 기대는 여전히 일방적 희망사항에 불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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