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개포동 사람들

    칼럼 / 공희준 / 2016-08-29 18: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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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북극점에서는 어디로 움직이든 남쪽으로 가는 셈이 된다고 한다. 왜냐? 북으로는 더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치로 남극점에서는 어느 쪽으로 몸을 옮기건 북쪽을 향하게 된다.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 기성 정치권 전체를 개포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여기에서의 개포동은 재건축 때문에 가뜩이나 높은 땅값이 또다시 들썩거리는 강남구 개포동을 지칭하지 않는다. “개혁을 포기한 동네”라는 뜻이다.

    이제는 어느 국민도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개혁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청와대가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우기면, 역시나 말이라고 비굴하게 맞장구칠 새누리당이 개혁에 나서리라고 믿는 국민들도 전무할 듯싶다. 그렇다면 이회창 총재 시절의 한나라당에 비견될 거대 ‘집권 야당’으로 행세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진정한 개혁세력일까?

    나는 청와대와 새누리당과 매한가지로 더불어민주당 또한 반개혁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8월 27일에 치러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의 성적표만 살펴보자. 청년위원장으로는 사행성 시비로 시끄러운 온라인게임을 운영하는 업체에까지 관여하면서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벌어들인 신흥 재벌 김병관 의원이 선출되었다. 그는 만 44세의 무늬만 청년이기도 하다. 여성위원장에는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가 뽑혔다. 양 전 상무는 “삼성은 무노조가 아니라 비노조”라는 황당무계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삼성그룹의 악명 높은 무노조 경영에 교묘하게 면죄부를 부여한 인물이다. 이렇게 개혁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 인사들을 당 지도부에 대거 포진시킨 더불어민주당이 개혁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면 어쩌면 파리도 비행기일지 모른다.

    국민의당은 개포동 사람들이 지배하는 낡고 무능한 정치를 확 뒤엎어달라는 수많은 유권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지지 덕분에 20대 총선의 정당투표 득표수에서 더민당을 제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의 놀라운 대약진은 여당도 반개혁세력, 야당도 반개혁세력인 여의도에 개혁세력을 위한 소중한 교두보를 확보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더 이상 북쪽으로 갈 수 없는 북극점에서는 아무 데로나 발걸음을 내디뎌도 남쪽으로 가는 일이 되는 것처럼 재벌과 자본의 과도한 시장권력에 재갈을 물리는 좌파적 개혁이든, 비대해하고 비효율적인 공무원 사회와 공공부문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는 우파적 개혁이든 일체의 개혁 시도가 실종돼버린 대한민국에서는 그 어떤 개혁이건 급진적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안철수 의원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합리적 개혁을 주장한다, 설상가상 격으로 국민의당의 박지원 비대위원장이나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진영은 중도개혁세력을 아우르는 제3지대 정당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안철수, 박지원, 손학규 3인 사이에서는 본인들에게도, 국민들에게도 대단히 치명적일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조만간 문재인 전 대표를 대선후보로 사실상 추대할 더불어민주당을 세 사람 모두 급진개혁세력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계순희 선수는 무패가도를 질주해온 일본의 유도 영웅 다무라 료코를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전에서 물리친 다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야요!”라는 당차면서도 의미심장한 금메달 획득 소감을 남긴 바 있다.

    안철수가 안철수에 대해, 박지원이 박지원에 대해, 그리고 손학규가 손학규 본인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친문세력과 더불어민주당의 본질에 관해서는 철저히 무지하다고 확신을 갖고 단언할 수가 있다.

    한국은 조속하고 총체적인 개혁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국가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감시할 책무가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고급 외제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고, 재벌회장들은 요번 광복절 특사에서 적나라하게 재확인됐듯이 어떤 죄를 저질러도 휠체어를 타고 감옥에서 합법적으로 탈옥한다. 집권 여당을 제치고 원내 제1정당으로 도약한 거대 야당은 신흥 재벌과 노조 무용론자가 당의 실세로 군림한다. 이 지경이면 급진적 개혁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혁명을 하자는 아우성이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와도 하등 이상할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실제적으로 거의 유일한 개혁세력이라고 할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존재하지도 않는 급진적 개혁세력과의 차별화를 꾀한다면서 뜨뜻미지근한 합리적 개혁을, 물에 술 탄 것 같고 술에 물 탄 것 같은 하나마나한 중도개혁을 외치고 있다.

    조직으로서의 국민의당은 아니어도 개인으로서의 안철수는 현재보다도 훨씬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변해야 한다. 급진은 본질을 건드리는 일이다. 근본을 천착하는 작업이다. 혁명을 한다는 사즉생의 자세와 각오로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만 하는 과제가 급진적 개혁이다.

    안철수 의원은 최근 들어 4차 산업혁명을 부쩍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다. 국민적 반향? 당연히 없다.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1차 산업혁명이 뭔지를, 2차 산업혁명이 뭔지를, 3찬 산업혁명이 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지식인은 대중을 나에게 맞추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나를 광범위한 일반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4차 산업혁명이 뭔지는 몰라도, 혁명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안다. 부정하고 불의한 세상을 확실하게 바꾸는 것이다. 개포동 사람들이 모든 권세를 전일적으로 틀어쥔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개혁이든 급진적 개혁이, 혁명적 개혁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혁명을 뜨겁게 선동해야 할 때 생뚱맞게도 4차 산업혁명을 단조롭게 설명하고 있다.

    안철수가 혁명, 곧 정치혁명의 큰길 대신에 산업혁명이라는 샛길로 빠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부분적 개선과 기술적 개량만으로도 한국사회의 변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오판한 탓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정치를 시작한 이유와 목적을 망각한 데 있다.

    근대적 산업혁명은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이 그 단초를 마련했다. 안철수는 나폴레옹처럼 국민들을 향해 함께 알프스산맥을 넘자고 힘차게 사자후를 토해야 하건만 엉뚱하게도 증기기관을 발명하겠답시고 혼자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꼴이다. 안철수가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개포동으로의 전입 준비를 착착 진행하는 지금, 개포 1단지 새누리당과 개포 2단지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의 얼굴에 유난히 화색이 흘러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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