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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근래에 보기 드문 독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에 지시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백 프로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큰 이 위험하고 걸쭉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 당사자는 누구일까? 믿기 어렵겠으나 이른바 종북좌빨 인사가 내뱉은 말이 아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이 기명 칼럼에 쓴 내용이다.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와 함께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논조를 선보인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한마디로 이제 동아일보마저 박근혜를 버린 셈이다. 동아일보는 조중동 빅3 보수지 중에서 반응속도가 가장 굼뜬 매체다. 이런 신문사조차 확실한 행동방침을 정했다면 대한민국 보수 진영의 파워 엘리트들은 박근혜 정권 이후를 대비하는 플랜 B를 벌써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듯싶다.
그런데 두 야당, 즉 문재인 전 대표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국민의당만은 아직도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양새이다. 이들은 새누리당에게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이를 예상 외로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은 자세를 취하자 이내 입장을 바꿨다.
역시나 보수지인 국민일보의 김진홍 논설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정서적으로 탄핵을 당했다고 단호히 규정했다. 국민들로부터 정서적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나라를 정상적으로 통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짓과 매한가지다.
문제는 두 야당, 정확히는 안철수와 문재인 두 유력 대선주자의 어정쩡한 태도다. 이들의 현재 모습은 나무 밑에서 감도 아니라 무려 물고기가 저절로 떨어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양당이 박근혜 정권의 붕괴와 새누리당이 자멸이라는 현금 두둑한 지갑을 길거리에서 운 좋게 줍고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 번째는 국정공백에 대한 나름의 진정성 있는 우려일 수가 있다. 국정의 최고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기능상실 사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국가운영에 치명적 허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일견 착한 걱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당신은 운전기사 없이 주차해 있는 차량과, 무면허 운전자가 똑같이 운전면허 없는 조수석 탑승자가 인간 내비게이션이랍시고 귀띔해주는 점괘대로 모는 자동차 가운데 굳이 하나를 골라 타야만 한다면 어디에 탑승하겠나? 분명, 합리적 이성을 갖추고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목적지에 조금 늦게 도착하는 한이 있을지언정 주차장에 정차해 있는 자동차 안에서 제대로 된 운전사가 올 때를 차분히 기다리리라.
작금의 국민의 심정이 그렇다. 국민들은 국정공백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호를 어쩌면 1년도 넘게 더 이끌어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 무섭고 끔찍하다.
두 번째는 소위 중도 보수표에 대한 맹목적 집착과 욕심이다. 문재인도, 안철수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을 주도했다가 지역적으로는 영남에, 세대적으로는 노장년층에 많이 분포됐을 보수 중도표 유권자들의 반감을 사게 되는 시나리오를 내심 두려워할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지금은 중도 보수표를 두고 정치공학적 유불리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과거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면서 혁명적 사상학습을 목적으로 「러시아 혁명사」를 읽었을 극소수 사람들만이 그 이름과 존재를 알아온 요승 라스푸틴을 이제는 웬만한 아이돌스타 못잖은 유명인으로 만들었을 만큼 박근혜 정권의 신뢰와 권위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지경으로 땅바닥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안철수와 문재인에게 요구되는 과제는 정치공학적 셈법 위에서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데 있지 않다. 알파고가 충격적으로 예고한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 전 국민이 밤새워 대비해야 마땅할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조선시대도, 고려시대도, 심지어 삼국시대도 모자라 샤먼(무당)이 권력을 농단하고 고인돌 앞에서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던 제정일치의 삼한시대로 결과적으로 되돌리고 만 박근혜 정권을 1분 1초라도 빨리 종식시켜 국민의 짓밟힌 자존심을 되살리고 실추된 나라의 국격을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두 야당이 당장 신속히 착수해야만 하는 중요한 역사적 과업이다. 야당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국민의 이름으로 신속히 국가권력을 회수해 다시금 ‘조국 근대화’에 매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거국내각 구성도, 책임총리제 도입도,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도, 더 나아가 개헌과 제7공화국 개막도 그 다음 순서다. 왜냐? 이 모두가 2층에서 처리할 일들이고, 그러자면 자발적 하야든 강제적 탄핵이든 1층 공사에 해당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까닭에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관계를 최악의 국면으로 몰아간 채 통일대박론을 공허하게 외치는 박근혜 정권의 자가당착적 대북정책을 1층도 짓지 않고 2층부터 지으려고 한다고 신랄하게 비꼰 바가 있다.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자유롭게 종전처럼 국정에 깨알같이 관여할 수 있도록 내버려둔 상태에서 진상 규명과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하는 두 야당의 현주소 또한 사이비 교주 2세의 근거 없는 예언에 의지해 남북관계에 임해온 박근혜 정권의 미개하고 앞뒤 안 맞는 행태와 하등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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