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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박근혜 대통령이 참여정부에서 대통령 정책실장을 역임한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친위쿠데타라 규정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습적으로 차기 국무총리에 지명했다. 김 교수가 책임총리제를 구현할 적임자로 판단돼 발탁했다는 것이 청와대 측의 배경 설명이다. 그밖에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몇몇 부처의 개각이 이뤄졌는데 이는 본질적 일이 아니므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김병준 교수는 참여정부 최고존엄이 중용한 인물이다. 이른바 ‘노의 남자’다. 참여정부에서 국록을 먹었던 김병준씨가 무슨 생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총리직 제의를 수락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핵심은 참여정부의 간판급 인사를 총리로 영입해 상대방의 분열을 유도하는 교란작전을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박근혜 정권이 다소 여유를 되찾았고, 박 대통령이 한숨을 돌리고 반격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다름 아닌 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야당이 시쳇말로 자진 납세했다는 점이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흔히 ‘봉헌’이라고 표현하더라.
나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고 쓰고 “박근혜의 헌법파괴”라고 불러야 마땅한 일들이 언론에서 폭로되었을 때 당장 야당 당사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당사 정문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크게 써 붙이고 싶었다. 멘붕에 빠진 기득권 세력이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든, 탄핵 추진이든 정부여당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현 정권이 불러들인 국가적인 심각한 난국을 타개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은 까닭에서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대한민국이 당면한 헌정 위기, 경제 위기, 안보 위기라는 3대 위기의 원인 그 자체다. 그런데 야당들은 거국내각이라는 떡고물과 책임총리라는 낚싯밥에 걸려들어 위기의 원인 제공자들과 위기의 극복 방안을 논의하려 드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하고 말았다. 마치 생선가게 주인이 왜 자꾸만 생선이 없어지는지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책 수립을 도둑고양이와 머리를 맞대고서 의논하는 꼴이었다. 야당은 박근혜가 주는 다이아몬드 반지에 눈멀어 물이 들어왔음에도 손가락에 반지를 끼느라 귀중한 노를 잃어버린 셈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물은 들어오고 있다. 촛불시위에 운집한 인파와 도처에서 이어지는 시국선언이 그 증거다. 물은 들어오는데 노가 없는 상황과, 노는 있지만 물이 마른 상황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전자를 고를 것이다. 왜냐? 중요한 건 물, 즉 민심이기 때문이다. 민심의 뒷받침만 있으면 일엽편주를 타고서 손으로 바닷물을 저어가며 태평양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것이 오묘한 정치의 세계다.
전격적인 총리 지명 강행과 박근혜 대통령의 충복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당대표적 사퇴 거부가 생생이 웅변주듯이 박근혜 정권은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을 의사가 전연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 하야 형식으로 사태를 조용하고 원만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현재, 이제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밟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것이고, 그러한 탄핵의 열쇠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쥐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했고, 그 덕분에 정세균 의원을 국회의장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더욱이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발의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 또한 적극 협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추미애 대표는 세 가지 이유에서 대통령 탄핵에 많은 심적 부담을 느끼고 있으리라.
첫 번째 이유는 참여정부 당시에 이뤄진 초유의 대통령 탄핵에 관여했으면서 또 대통령 탄핵을 시도하느냐는 비판이다. 더군다나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실현되면 두 차례의 현직 대통령 탄핵 과정 모두에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지닌 정당이 주도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두 번째는 같은 여성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느냐는 일각의 따가운 시선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패는 한국 여성정치의 실패로 등치될 위험이 크다.
세 번째는 민주당 경선에서 추미애를 밀어준 문재인 전 대표가 내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꺼려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으로서는 “지금 이대로”가 바람직하지, 대선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게인 체인저 역할을 할 것이 명백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코 달갑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선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년 4개월이나 더 청와대에 있으면서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면 어떠한 놀랍고 불행한 일들이 연달아 터질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 국민들은 사이비 무속인에게 국정을 통째로 내맡기는 전대미문의 엽기적 행각을 벌여온 대통령이 또 언제 어디서 무슨 사고를 칠지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주식시장부터 요동치는 모습을 보시라. 어디 그뿐인가? 박근혜 정권이 정권안보를 위해 북한을 선제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시중에 팽배해 있다.
좋은 탄핵도 없고, 나쁜 탄핵도 없다. 단지 필요한 탄핵과 불필요한 탄핵만이, 국민이 원하는 탄핵과 원하지 않는 탄핵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2004년 봄의 탄핵은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탄핵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반이 경과한 2016년 가을의 탄핵은 국민이 원하는 필요한 탄핵이다. 추미애 대표의 살신성인하는 역사적 결단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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