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막대기, 추미애 막대기

    칼럼 / 공희준 / 2016-11-29 11: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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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이미 고인이 된 상태다. 무려 200만 명 가까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한 촛불집회에서 단 한 명의 연행자도 발생하지 않은 사실은 한편으로는 집회와 시위가 대단히 평화적으로 이뤄졌음을 웅변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검찰과 경찰 같은 국가공권력의 중핵조직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복종심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보호 의지마저 상실했음을 시사한다.



    박근혜의 정치적 유고는 대한민국에 권력의 진공상태를 낳았다. 과거에는 이 진공상태를 전두환과 노태우 부류의 부패한 정치군인들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군부가 현실 정치에 개입해 국가권력을 장악․찬탈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쿠데타의 생명은 속도와 보안이다. 우리나라에서 등록된 자동차 대수는 2,100만 대를 훌쩍 넘어섰다. 군사쿠데타를 시도하는 군대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는커녕 아마 삼보일배의 속도로 서울 도심을 향해 느릿느릿 진격해야만 하리라. 더군다나 보안은 속도보다도 더더욱 보장이 안 된다. 군에서 복무중인 병사들이 부모와 친구와 애인에게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 부대의 출동 사실을 사전에 귀띔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기술발전이 가져온 이러한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가 하필이면 대한민국 제1야당의 수장이라는 데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계엄령 가능성을 뜬금없이 제기했을 때 나는 추미애의 시계는 참여정부 최고존엄이 탄핵당한 2004년 3월 12일과 17대 총선이 치러진 그해 4월 15일 사이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추미애씨는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광주시민들과 호남인들의 표심을 붙잡기 위해 금남로에서부터 망월동 국립묘지까지 삼보일배를 감행한 바가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대통령을 탄핵하는 이유가 책 한 권을 넘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당당한 자신감은 그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참여정부 최고존엄을 탄핵해야 하는 이유가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분량이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야만 하는 이유는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 기업인 구글이 보유한 서버들의 용량을 전부 채우고도 남을 지경이다. 최순실 패거리의 헌법유린과 국정농단 사태도, 김기춘의 정당성 없는 무소불위한 밤의 대통령 노릇도 박근혜의 적극적 관여와 일관된 묵인 없이는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를 재차 경신했다. 현직 대통령 지지율 4퍼센트는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찍지 못할 미증유의 대기록이다. 즉 거의 모든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말끔하게 말아 잡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뜻한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판단하는 상황은, 야당 입장에서는, 특히 제1야당인 더민당 입장에서는 막대기를 꽂아놔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한다. 추미애 대표가 2004년 탄핵 정국 초기에 과시했던 옹골찬 기세를 너끈히 능가하고도 남을 정도의 과도한 자신감을 또다시 보여주는 것이 무리가 아닌 까닭이다.



    허나 현재 친노세력이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는 우리나라의 야당들은 막대기만 꽂아놔도 이기는 선거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해왔다. 왜냐? 막대기만 꽂아놔도 이기는 선거마다 유권자들이 바라보기에는 막대기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을 경쟁력 달리는 인물들을 고집스럽게 후보자로 내보내온 탓이었다.



    가까운 예로 2012년의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복기해보자. 그때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의 반감은 작금의 박근혜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노여움과 폭과 깊이와 강도에서 막상막하였다. 그럼에도 12월에 치러진 대선에서 야당은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본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손학규씨와 안철수씨를 한 명은 기기묘묘한 모바일 경선으로, 또 한 명은 비민주적인 단일화 프레임으로 차례차례 강제로 주저앉힌 다음 비교적 득표력이 떨어지는 문재인씨를 후보로 출전시킨 것이 치명적 패착이었다. 실력 따로, 성적 따로 논다는 견지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최순실씨의 딸인 정유라나 대한승마협회를 마냥 느긋하게 비난만 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은 국정운영의 역량과 경륜에서는 손학규에게, 표의 확장성 측면에서는 안철수에게, 검증된 현장행정의 경험과 능력에서는 박원순에게, 새롭고 신선한 이미지에서는 이재명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문재인씨가 더불어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여유 있게 선출되리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야당이 대선 후보로 막대기를 꽂아놔도 당선될 것 같은 분위기를 이번에는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준 덕분이다.



    그런데 2012년과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야권 입장에서 막대기를 꽂아놔도 승리할 것 같은 선거구도가 다시금 만들어진 것은 같지만, “그렇다면 나도 한번”이라고 용꿈을 꾸는 야심가들이 2016년에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이외에도 더민당 안에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추미애 대표의 동선과 메시지를 의도하지 않게 자세히 살펴봤다. 내 개인적 관찰 결과, 추미애의 발언과 움직임은 당대표에 만족하거나 킹메이커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의 수위를 진즉에 뛰어넘어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막대기를 꽂아놔도 이길 것 같은 선거에 추미애라고 나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막대기만 꽂아놔도 이기는 선거에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내가 막대기요!”를 외치며 출사표를 던질 테고, 더 이상 막대기를 꽂을 공간이 없어지는 그 순간 박근혜와 친박세력을 통렬히 직격했던 국민의 거대한 분노의 해일은 그 방향을 바꿔, 오만과 타성에 젖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고 케케묵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낡은 패권주의적 정치인들과 정치세력을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쓸어버릴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까르페 디엠! 즉 현재를 맘껏 즐기시라. 막대기 꽂기 놀이 열심히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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