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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엊그제 국회에서 발의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가결이 거의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관건은 승패가 아니라 점수 차이다. 연인원 6백만 명을 웃도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리와 광장으로 몰려나와 “박근혜 퇴진!”을 입을 힘차게 모아 외친 위대한 국민혁명에 감히 맞서서 탄핵 반대표를 던질 정도의 강심장을 가진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던진 그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임금과 함께 목이 잘려나간 충성스러운 왕당파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어쩌면 역사책에 각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6년 12월 현재, 이미 실효적으로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의 자격도 권능도 권위는 물론이고 심지어 인간적 자존심마저 모두 상실한 박근혜를 지키겠답시고 민심을 거역한다는 것은 끽해봤자 수레바퀴 앞을 무모하게 막아서는 당랑거철의 순장조 신세밖에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살아 있는 인간 병마용이 되기를 자처하는 헛짓거리일 뿐이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장을 통과한 다음에 여의도 정치권이 연출할 추레하고 비루한 정경은 벌써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새누리당은 당내에 남아 있는 박근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당명 개정을 필두로 할 수 있는 모든 쇼를 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박근혜 탄핵의 일등 공신을 저마다 자처하며 숟가락 꽂기에 여념이 없으리라.
이와 같은 여야의 이해관계가 일치해 일어난 사건이 예년과 다름없이 금년에도 자행된 쪽지예산의 추태다. 촛불을 켜고 광화문으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국민들이 동네에서 아마 제일 먼저 마주칠 모습은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새로 인도를 포장하는 낭비적인 관급공사 현장일 터이다. 누가 대통령을 걷어내랬지, 보도블록 걷어내라고 했냐?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게 국민들은 면죄부를 줄 계획이 전혀 없다. 온갖 눈치 살피며 이리저리 짱구 굴리다가 막판에 탄핵에 찬성했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법유린을 방조하고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을 묵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이 자리에서 명확하게 대못을 박아두겠다. 새누리당 구성원들은 모조리 박근혜와 공범관계다. 여기에서는 며칠 전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씨나 김용태씨 또한 예외가 될 수 없다. 도주순서가 빠르다고 해서 범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야당은 철면피한 기회주의적 근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부분에서는 새누리당 비박계와 견주어 별로 나을 구석이 없다. 그 압권은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 프레임이다.
어떤 인물이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표현을 가장 빨리 사용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문제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시간을 질질 끌며 반격을 도모할 수 있는 빌미와 여유를 제공했다는 데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질서 있는 퇴진을 구실로 내세워 정국의 분위기 반전을 꾀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을 부추기고, 야당의 분열을 획책했다. 그 과정에서 국정공백은 장기화됐고, 국가 브랜드는 바닥을 모르고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 청와대가 남성들의 발기불능 치료제인 비아그라의 연관검색어가 되었겠는가?
혁명은 질서의 일시적 소멸을 뜻한다. 왜냐? 시대착오적 족쇄가 돼버린 기존 질서의 전면적 해체와 전복 없이는 역사발전의 단계에 무리 없이 조응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유에서다. 구질서가 소리치는 질서는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반대한다는 이야기의 완곡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2016년의 11월 국민혁명에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무조건 퇴진을 요구했다. 정치권은 질서 있는 퇴진 프레임을 만들어내 국민들의 여망에 지능적인 물 타기를 시도했고, 이러한 김빼기 작전에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양대 기득권 정치세력에 더해 애먼 국민의당까지 자신의 주제 파악 못하고서 철딱서니 없이 가세했다.
파괴적 혼란은 구질서가 무너질 때에 빚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질서가 제때 나타나지 못할 때 생겨난다. 질서 있는 퇴진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교묘하게 가로막는 교활하고 음흉한 악마의 유혹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악마의 유혹이 더욱 크고 거세며 뜨거운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고, 그 결과 질서 있는 퇴진을 부르짖었던 자들마저 무조건 퇴진으로 슬그머니 말을 갈아타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질서 있는 퇴진’은 ‘여성친화적 성폭행’만큼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심각한 모순어법임을 지혜롭게 간파해야만 한다. 나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즉각적 퇴진은 정의롭고 평등한, 그리고 부강하고 번영하는 참다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해나가는 거대한 역사적 대장정의 첫걸음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외롭지만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래서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박근혜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우리가 단지 박근혜 축출에만 만족하고서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출 때 제2, 제3의 ‘질서 있는 퇴진론자’들이 다시금 준동할 테고, 그들의 준동을 강 건너 불구경으로 방치한다면 우리는 구질서가 강요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로” 아주 질서 있게 복귀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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