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나 법치냐 (3)

    칼럼 / 공희준 / 2016-12-2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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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적폐 청산이 국가적 화두가 되었다. 나라 곳곳에 켜켜이 쌓인 쓰레기들을 말끔하게 청소하자는 뜻이다. 그만큼 변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요구가 크다는 의미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듯이, 적폐 청산에도 순서와 완급이 있는 법이다. 국민들은 최우선적으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로 박근혜 대통령의 근위병이자 호위무사를 자처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권세와 특혜를 만끽해온 친박세력을 지목하고 있다.

    걸어 다니는 적폐라고 할 이 친박세력들을 제일 많이 포용하고 있는 공간이 올해 상반기에 출범한 제20대 국회다. 친박세력은 친문세력과 더불어 20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현역 국회의원들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친박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진석 의원을 당대표 권한대행까지 겸직할 수 있는 제왕적 원내대표로 만듦으로써 건재를 과시했다.

    어쩌면 친박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월간중앙에 실린 고영태씨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서청원 의원을 새누리당 당대표로 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 말투와 분위기가 마치 상관이 아랫사람에게 지시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친박이라는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에는 친최, 곧 친최순실들이 알맹이로 숨어 있었다.

    한데 본질은 허영심 가득한 일개 강남 아줌마에 지나지 않는 최씨가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인 박 대통령을 상왕처럼 부려먹었는지, 아니면 오랜 친구 자격으로 개인적 차원의 조언을 했는지가 아니다. 관건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자인 최순실씨가 선출된 권력을 책임지는 검증된 당대표를 뽑는 집권당 당수 경선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나란히 새누리당의 공동 통치자이자, 친박세력의 양대 주주였던 셈이다.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유신체제 시절에 유신정우회라는 정치조직이 있었다. 약칭인 ‘유정회’로 세간에 더 잘 알려진 이 집단은 겉으로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선출되는 형식을 취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박정희 맘대로 낙점해 국회에 파견한 청와대의 근위병이요 호위무사였다.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국회의원이 아닌 것도 아닌 독특한 신분의 이 유정회 국회의원들은 공식 집권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보다도 더 악랄하고 광신적으로 유신체제를 옹호하고 찬양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유정회 의원의 숫자는 국회 전체 의석의 3분의 1에 달했다.

    그나마 유정회 의원들은 대통령인 박정희가 고르기라도 했다. 최순실씨가 새누리당의 공천 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과 정황이 단순한 심증 차원을 넘어 사실과 물증 수준에 점점 가까워지는 요즘은 새누리당 소속 금배지들이 박근혜의 남자인지, 최순실의 남자인지마저 헷갈릴 지경이다.

    박근혜의 남자인지, 최순실의 남자인지 정체가 아리송한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들은 본인들이 유권자의 직접 투표를 거쳐 국회에 진출했다고 강변하고 싶을 게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대부분이 일단 새누리당 후보만 되면 막대기를 꽂아놔도 무조건 당선되는 지역구 출신임을 감안하면 현재의 새누리당 의원들과 과거의 유정회 의원들 사이에 과연 질적으로 얼마나 차별성과 변별력이 있을지 무척 의심스럽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서 양심의 소리에 한번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란다.

    이러한 배경과 사정으로 말미암아 적폐 청산의 첫 단계는 친박 청산이 당연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사실상의 유정회 의원이라고 일컬어야 마땅할 국회의원들이 20대 국회 전체 의석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의석수를 점유하고 있다는 거다. 일각에서는 진짜 친박, 즉 진박만을 친박세력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모르고서 하는 얘기면 천부당만부당한 헛소리이고, 알고서도 하는 말이라면 사악한 궤변이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그 뿌리는 한결같이 친박에 가 닿는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며칠 전에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까지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근혜를 지키겠다며 선거운동에 나선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친박이든, 비박이든 초록이 동색인 이유다.

    우리 속담에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는 경고의 말이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국민이 바라고 역사가 명령할 경우에는 빈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집 정도가 아니라 아흔아홉 칸 기와집도 아낌없이 불태워야만 할 때가 있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국회의원은 결코 빈대가 아니다. 새로운 법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고, 국가 예산을 심의할 수 있으며, 다수의 유급 직원을 휘하에 두고서 면책 특권을 비롯한 막강한 권력수단들을 손에 쥐고 있다. 적당한 숫자만 규합하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기대어 언제라도 국정을 마비시킬 수 있는 능력자들이 국회의원이다.

    그 으리으리한 국회의원이, 더군다나 최순실이 공천에 관여한 새누리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현재의 20대 국회에서 무려 130명 가까이 군림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에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건 상관없이 실패한 대통령이 될 것이 예정되어 있다. 왜냐? 생존을 목적으로 잠시 위장이혼을 택한 친박과 비박이 다시 대오를 합쳐 사사건건 차기 정부의 발목을 잡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회구도와 정치질서 아래에서는 심지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돌아와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하여도 국회 선진화법을 필살기로 앞세운 새누리당 친박세력의 집요한 발목 잡기와 끈질긴 방해 책동에 가로막혀 변변한 개혁 정책 하나 시행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2012년에 박근혜가 국회선진화법 제정에 얼떨결에 동의한 것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돼버린 격이다.

    2016년 국민혁명에 담긴 민심의 참뜻은 우리나라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혁명적으로 과감하게 확 바꿔놓으라는 데 있다. 국민혁명에 담긴 민의의 요구와 시대정신을 성공적으로 성과 있게 실천해나가려면 국회가 제헌의회 버금가는 근본적인 국가 재설계의 견인차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20대 국회는 친문 부류의 정치 자영업자들을 위한 괜찮은 일자리 구실에 머물고 있다. 국민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보수반동세력의 선봉에 선 친박들을 위한 안전하고 합법적인 도피처로 변질돼 있다. 설령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 한들 국회 내에 반혁명의 바리케이드를 철통같이 치고 있는 친박들에게 원천봉쇄를 당해 숨 쉬는 것을 빼놓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임기 내낸 아무것도 없을 것이 명약관화한 까닭이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은 폐서인이 되어 청와대 구석에 유폐되었는데도 친박은 폐족은커녕 외려 더 기세등등해져 점령군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현실이야말로 20대 국회가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혁명적 변화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는 ‘남한의 헌병’임을 생생하게 폭로하는 적나라한 증거라고 하겠다.

    국가운영의 필수적인 한 축인 의회권력이 대한민국을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확 바꾸는, 국민과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과 모험의 선발대로 거듭나려면 지금의 20대 국회는 하루빨리 해산되어야 한다. 지체 없는 국회해산 없는 친박청산은 구태 정치의 유지에 봉사하고 기득권 정치의 확대재생산에 부역하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회해산의 선결요건은 개헌이다. 나는 국회해산을 위한 방법론적 측면에서는 강경한 개헌파다, 허나 즉각적인 국회해산을 전제하지 않는 그 어떠한 개헌에도 반대한다는 맥락에서는 철두철미한 호헌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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