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한국정치 (5) - 문재인의 “공무원 하기 좋은 나라”

    칼럼 / 공희준 / 2017-01-02 19: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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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2016년 11월의 제45대 미합중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에 쓴 글에서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변화(Change), 정의(Justice), 위대함(Greatness)이라는 세 가지 열쇳말로 국가의 정체성이 해명될 수 있다고 진단한 바가 있다. 미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3요소들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변화와 위대함을 차지한 데 비해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것으로 변변히 만들지 못한 탓에 질 수 없는 것으로 보였던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것이 나의 미합중국 대선 관전평이었다.

    한때 우리민족을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고 일컬은 적이 있다. 고조선 시대의, 삼국시대의, 발해와 신라가 위아래로 병립하던 남북국 시대의, 고려시대의 민족성이 어땠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조선왕조가 들어서고 ‘우리식 성리학’이 득세한 이래로 은근과 끈기가 평균적인 한국인의 성격을 대표할 수 있는 요소였음은 진실에 가깝다. 은근과 끈기는 역사가 증명하듯이 자주적인 근대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재료로 쓰이기에는 대단히 부적합한 자질들로 판명되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은근과 끈기로 도달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최대치였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는 세 가지 단어는 무엇일까? 물론 휴전선 남쪽의 남한에 시야를 국한할 때의 일이다. 나는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다음의 한국과 한국인을 빚어온 세 가지 단어는 발전, 평등, 정이라고 생각한다. 발전에 대한 염원과 평등을 향한 갈망과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에 나오는 바로 그 정(情)이 한국의 현대사를 짓는 기초가 되고, 기둥이 되고, 들보가 되어왔다.

    따라서 당신이 조기 대선으로 치러질 것이 명백한 대한민국의 제19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우리나라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면 발전, 평등, 정이라는 한국정치의 3원색 중에서 최소한 두 가지 색깔은 본인의 자산으로 선점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비록 허구적일지언정, 막말과 선동의 꼼수를 동원했을망정 미국 정치의 3원색 가운데 2개에 먼저 확실히 숟가락을 꽂은 덕분에 유권자들의 신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산업화로 표현되는 압축적 경제성장은 발전에 대한 염원이 낳은 산물이었다. 4.19 학생혁명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거쳐 6월 시민항쟁을 지나 2016년의 국민혁명에 이르는 여정은 평등을 향한 갈구가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정이 있었다. 발전의 주역이든, 평등의 옹호자이든 대중의 인식에서 인간미가 모자라 보이는 인물들의 거의 대부분이 국민의 버림을 받거나 민심의 믿음을 잃었다.

    친문세력이 현재 여론조사에서 맹위를 떨치는 근본적 비결은 그들이 참여정부 최고존엄을 정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으로 영리하게 포장한 데 있다. 참여정부 최고존엄이 실제로 정이 많은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매정한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어차피 정치투쟁의 본질은 대중의 인식을 놓고 벌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식은 분명 형태 없는 재화다. 그러나 그 무형의 가치재를 효과적으로 장악하면 돈과 자리와 이런저런 이권 같은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가시적 재화들을 머잖아 자연스럽게 수중에 넣을 수가 있다. 단적으로 히틀러는 독일 대중의 인식을 지배한 연유로 잠시나마 유럽 대륙을 지배할 수가 있었다.

    허나 정이 없어 보이면 집권에 성공할 수 없듯이, 정이 있어 보이는 것만으로는 집권의 꿈을 이룰 수도 없다. 국민들이 가진 발전 욕구와 평등 심리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줘야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대선정국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고 있는 것만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는 정이 많아 보이는 참여정부 최고존엄의 잔상을 자신의 후광으로 십분 활용하는 한편으로, 평등을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는 주류 진보진영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강점과 약점은 동전의 양면 관계다. 약점이 돼버린 강점은 원수로 돌변한 동지만큼이나 무섭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이 집권할 경우 박근혜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특별한 발전의 계기와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고서 나라 전체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더욱더 침체와 무기력의 수렁에 빠져들리라는 우울한 전망에는 이른바 극렬 문빠들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이 흔쾌히 동의하고 있다. 대신에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과는 달리 세상이 조금은 평등해지지 않겠느냐는 낙관적 예상은 시중에 팽배해 있다.

    다름 아닌 이 지점이야말로 약점으로 뒤바뀔 채비를 늘 하고 있는 문재인의 ‘치명적 강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문재인과 친문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가뜩이나 심각한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현상은 더욱더 심화될 가능성이 매우 큰 까닭에서다.

    작금의 정세는 새누리당이 분당에 이를 지경으로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된 상태다. 새누리당이 남긴 권력의 공백을 잽싸게 메운 더불어민주당이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이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게 되면서 제일 먼저 생겨난 일이 공무원 봉급이 3.5퍼센트나 인상된 사건이다. 월급이야 겨우(?) 3.5프로밖에 오르지 않았지만, 각종 수당과 별의별 보조금 명목으로 공무원들에게 또 얼마나 듬뿍 국민들의 혈세를 통 크고 인심 좋게 퍼줄지는 동네 주민센터 앞에만 가도 가슴이 긴장감으로 벌렁거리는 우리 같은 힘없고 평범한 서민들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말미암아 마트에서 판매하는 계란 1판의 가격이 무려 1만 원이 됐다. 그 여파로 수많은 양계농가와 영세 치킨집들이 도산하고, 제과점에서는 카스테라 빵이 자취를 감췄으며,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달걀 프라이 하나 해주기가 버거워졌다. 이 총체적 민생파탄의 와중에서마저 공무원 봉급만은 정치권의 아무런 반대 목소리 없이 득달같이 올라갔다. 공무원 같은 신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핵심적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쥔 것과 비슷한 분위기에서 찾아온 첫 번째 불청객, 아니 불평등이다.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 국민들을 찾아올 불평등이라는 이름의 불청객의 방문은 이제 비로소 시작일 뿐이다. 억대의 학비가 드는 로스쿨 도입을 고집스럽게 강행하는 모습을 참여정부 말기에 목격하고서 나야 이미 충분히 짐직한 터이지만….

    문제는 한 달에 2백만 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절반이고, 설령 2백만 원을 넘게 벌더라도 다음 달에도 그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 있을지 지극히 불투명한 사회에서 공무원 평균연봉 6천만 원 시대가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성큼 다가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기업만 하기 좋은 나라”에서 “국민 하기도 좋은 나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문재인의 “공무원만 하기 좋은 나라”로 급변침하기 일보 직전에 와 있고, 급변침의 후과로 대한민국은 수심을 모를 깊고 어두운 바닷물 속으로 영원히 침몰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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