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이기적인 부상투혼

    칼럼 / 공희준 / 2017-01-11 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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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 공희준 정치컨설턴트
    “학생들은요?”

    역사에서 ‘만약에’는 부질없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월호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의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을 비롯해 수백 명의 탑승객들을 가득 태운 채 맹골수도에서 바다 속으로 선체가 기울어졌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신속한 구조 책임이 있는 관계부처 공무원들 앞에 등장해 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위와 같은 질문을 단호히 했더라면 자칭 애국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월호 침몰 사건은 단순한 교통사고 수준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잘 알고 있는 바대로 박근혜는 세월호가 둥근 구상선수만 물 위에 간신히 떠 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야 국민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한반도에 국가라고 칭할 수 있는 형태의 조직적 단위가 출현한 이래로 늘 그러해왔듯이 통치권자가 깊은 우려와 빠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사태에서 관료들은 언제나 늑장을 부리거나 무성의한 자세를 보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가라앉은 당일의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일본의 산경신문(세칭 산케이신문)의 한국 특파원은 이를 소재로 불미스러운 내용의 기사를 작성 또는 ‘집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갖가지 추측과 별의별 짐작이 끝없이 난무해왔다.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은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핵심적 문제로 떠올라 치열한 법리 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 변호인 측에서는 “때마침 그날 대통령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는 투의 이른바 ‘컨디션론’을 급기야 꺼내든 모양이다.

    철인(哲人) 통치자, 즉 철학적 깊이가 있는 지혜로운 지배자가 나라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의 공통된 소망이었다. 하지만 민심의 기대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1년 365일 내내 쌩쌩한 몸 상태를 유지하는 철인(鐵人) 대통령을 갖기까지를 바라는 무모한 국민들은 별로 없을 성싶다.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철권통치를 행했던 진시황조차 불로장생의 꿈만은 이루지 못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정치만큼 쉽고 폭넓게 통용될 수 있는 영역도 흔하지 않다. 그런데 마음만 있다고 해서 꼭 훌륭한 위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공익을 증진하는 데 마음을 쓰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마음을 쓰는 데만 익숙하다면 그런 경우에는 본인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정치 대신에 장사를 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휴전선은요?”
    박근혜 대통령이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자마자 지체 없이 내놨다는 반응이다.

    “대전은요?”
    2006년에 한나라당 당대표 자격으로 지방선거 유세를 한창 돌다가 괴한에게 피습당해 수술을 받고 깨어난 박근혜가 처음으로 했다는 물음이다.

    아버지가 목숨을 잃었다는데, 목이 흉기에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안보를 걱정하고, 선거의 판세를 염려했다.

    세월호 선실 안쪽으로 바닷물이 무섭게 차오르던 그날, 박근혜는 아버지를 잃지도 칼에 찔리지도 않았다. 컨디션이 나쁘다 한들 얼마나 나빴겠는가? 박근혜와는 동의어와도 같았던 부상투혼은 하필이면 그날은 발휘되지 않았다. 손에 붕대를 두르고 수많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누던 붕대투혼도 이날따라 유달리 잠잠했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얼굴에 반창고를 붙이고라도 구조 작업을 독려해야 마땅했다고 분노의 돌직구를 날린 것이리라.

    부상투혼을, 그리고 붕대투혼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목격해왔다. 운동시합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그와 같은 선수들이 매 경기당 거의 한 명씩은 나타나곤 한다. 그들은 팀의 승리를 위해서, 자신의 인기와 몸값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

    대통령도 소속 정당을 위해서,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부상투혼을 발휘하고, 붕대투혼을 선보일 수 있다. 단 대통령과 프로스포츠 선수와의 중요하고 결정적인 차이점이라면 한 나라의 지도자는 타인을 위해서도, 스스로가 직접적으로 몸담지 않은 집단을 위해서도 부상투혼과 붕대투혼을 불태워야만 한다는 점이다.

    박근혜의 부상투혼은, 붕대투혼은 결국 알고 보면 오로지 자기 자신과, 제한된 범위의 주변 측근들만을 위한 투지요 정신력이었다. 그는 국민들을 위해서는 부상투혼과 붕대투혼을 발휘할 생각이 없었다. 다시는 박근혜 같은 이기적인 대통령이 결코 나오지 말아야 할 이유다. 차기 대선에서 이기적인 후보는 절대 대통령이 되지 말아야만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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