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반출기밀’ 파기… 檢 “법원이 증거인멸 방조”

    사건/사고 / 이진원 / 2018-09-11 16: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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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용 변호사 영장 두차례 기각
    法 “부적절행동이나 범죄는 아냐”
    윤석열 “지위 막론 책임 물을 것”

    ▲ 유해용 변호사가 11일 오후 검찰의 압수수색이 끝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시민일보=이진원 기자]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가 반출한 대법원 기밀문건이 전부 파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11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 변호사(52)는 지난 6일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두 번째로 기각되자 문제가 된 자료를 파쇄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일 유 변호사의 재판개입 의혹과에 관련,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올해 초 법원에서 퇴직할 때 다른 상고심 사건에 대한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와 판결문 초고를 대량 가지고 나온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검찰은 유 변호사의 혐의 전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이미 확보하고 있던 문건 1건에 대한 압수수색만 허용한 상태였다.

    이후 불법반출 문건을 확인한 검찰은 곧바로 이 문건들에 대한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이튿날 기각됐으며, 지난 7일 다시 청구한 영장도 이날 기각됐다.

    현재 검찰은 지난 6월 수사가 시작된 이래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을 기각하며 빗장을 걸어온 법원이 이제 핵심 피의자의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불법반출 문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처음 기각되자 “지금부터는 불법 반출된 자료들이 은닉 또는 파기돼도 막을 방법이 없게 됐다”면서 “압수수색 영장기각은 심각한 불법 상태를 용인하고 증거인멸 기회를 주는 결과여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에 법원은 해당 변호사의 문건 반출이 죄가 되지 않으며, 수사기관이 문건을 입수하는 건 재판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장을 기각한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대법원 자료를 반출한 행위가 대법원 입장에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나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유 변호사의 문서 반출은 형사적 책임까지 물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검찰이 향후 문건 파기가 이뤄진 이상 사법부 안팎의 조력자가 있는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철저히 추적한다는 방침임에 따라 수사는 전방위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서울중앙지검은 법원에 결정에 반발하며 1년여만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했다.

    검찰은 10일 밤 이례적으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명의로 입장을 내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주요 수사의 피의자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2017년 9월8일 서울중앙지검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일반적인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대단히 다르다”며 반발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법조계 안팎에서 ‘검찰이 심했다’란 평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구속영장과 달리 인신구속을 필요로 하지 않는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률이 그리 높지 않은 데다가 사법부를 향한 수사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관련, 법원의 연이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유 변호사 사례가 처음은 아니었다.

    수사가 본격화한 이후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는 경우는 10건 중 1건 꼴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각률이 무려 90%에 달했다.

    이와 관련, 법원행정처 통계를 보면 2016년 전국 법원에서 압수수색영장은 총 16만8268건(89.2%)이 발부됐고, 일부 기각이 1만8543건(9.8%), 기각이 1727건(0.9%)이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압수수색 영장기각률을 두고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한 끝에 영장을 발부받고 11일 오전 유 변호사의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남은 불법유출 문건과 다른 혐의 관련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나, 압수수색에 대비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던 만큼 유의미한 증거자료가 대부분 사라졌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 발부를 미루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방식으로 증거인멸을 돕지 않았는지, 이 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관여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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