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기부금 투명성 강조하더니 법령개정 작업 2년째 미뤄
이영란 기자
joy@siminilbo.co.kr | 2020-06-09 11:19:45
단체 반발에 핵심조항 수정만 거듭...여가부, 정의연 자료제출 거부
[시민일보 = 이영란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부실회계 논란을 계기로 기부금이나 후원금 모금활동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관련 법령의 개정 작업을 2년째 미뤄온 것으로 9일 드러났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기부금 모금 활동의 투명성 강화를 강조했으나 정작 정부가 기부금 관련 정보를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뜻에서 개정한 법령안의 핵심 내용은 당초 취지에서 한참 후퇴한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행안부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기부금품법) 개정안을 이날 국무회의에 상정하려다 갑자기 연기했다.
앞서 행안부는 전날 예정됐던 보도일정을 취소하면서 "조문 수정으로 (개정안이) 국무회의 안건에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지난해 6월에도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로 하고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가 돌연 안건에서 제외한 바 있다.
정부가 기부금품법 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은 지난 2018년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후원금 유용과 엉터리 시민단체 '새희망씨앗' 등이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서 이를 계기로 기부 투명성과 기부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 작업에 착수해 그해 12월 처음 입법예고를 했던 것.
하지만 행안부는 그 이후에도 시민사회단체 등 기부금품 모집단체들의 반발 속에서 핵심 규정 수정만 거듭하면서 2년째 법령 개정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쟁점이 된 부분은 기부자들이 자신의 기부금품을 받은 모집자에게 더 자세한 사용명세 공개를 요청할 때 모집자가 의무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도록 한 신설 규정이다.
해당 규정은 기부금품 모집자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사용명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기부자가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출납부나 모집비용 지출 명세서 등 장부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부자의 추가 정보공개 요청을 받으면 모집자는 7일 안에 해당 내용을 공개하도록 의무 규정을 뒀다.
영세한 시민사회단체 여건상 '7일 이내 공개' 규정을 지키기 어렵고,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해당 단체들의 항의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후 행안부는 기부금 모집단체 측 의견을 수렴해 '7일 이내'를 '14일 이내'로 완화한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다시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완화한 내용에 대해서도 기부금 모집단체 측에서 반대 의견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기부자 요청 시 정보 의무공개' 부분은 삭제됐다.
대신 '기부자는 모집자에게 기부금품 모집·사용 관련 장부 등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기부금 투명성 강화 조항이 당초 개정 취지에서 후퇴를 거듭한 셈이다.
이 개정안은 지난 4일 차관회의를 통과해 이날 국무회의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행안부는 다시 수정이 필요하다며 일정을 또 미뤘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정의연의 회계부정 등 각종 의혹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국회의 정의연 관련 자료제출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국회법 등에 따라 정부부처는 국회의 자료요청에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응해야 하는데 유관 정부부처인 여성가족부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실제로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지난 3일 여가부에 ‘지난 10년 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심의위원회(심의위) 위원 명단과 개최 내역’, ‘정의연이 제출한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 정기 보고서’ 등 2가지 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여가부가 이를 거부했다.
이 중 심의위는 2010년 이후 정의연의 각종 시설물 건립과 기념사업 등에 국가 예산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린 조직이다.
그러나 여가부는 이 같은 심의위에서 누가 활동했는지를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가부는 또 정의연으로부터 제출받았어야할 사업 정기 보고서 제출 요구도 거부했다고 곽 의원 측은 전했다. 일각에서는 전·현직 심의위원 상당수가 정의연 출신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날 여가부는 곽 의원이 요구한 정의연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한 이유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개인정보 때문이라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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