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이 아닌 기회”… 6개월의 동행으로 되돌린 한 청소년의 방향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6-02-02 09:47:22

  안명기 법무부 청소년범죄예방위원

 

법무부 청소년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라는 제도가 가진 의미를 현장에서 실감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에 앞서, 일정기간 동안 선도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검사가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면, 청소년 범죄예방위원은 약 6개월간 대상자를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하고 생활 전반을 함께 점검하며 재범을 막는 역할을 맡는다.


이 활동은 2022년 12월, 아내가 먼저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후 부부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은 단순한 상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배우게 되었다.

2023년 여름, 고양지청에서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을 맡게 되었다. 이 학생은 친구들과의 대화
도중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해 폭력을 행사했고 피해 학생이 상해를 입으면서 사건은 경찰 신고를 거쳐 검찰에 송치되었다. 이 학생은 검찰의 선도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청소년 범죄예방위원회와의 6개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나는 ‘관리’가 아닌 ‘관계’를 먼저 생각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상자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고 첫 믿음이 있어야, 변화도 시작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매달 1~2회 대면 상담과 수시 전화 상담을 병행하며, 월별 미션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첫 달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슬펐던 일과 가장 행복했던 일’을 글로 쓰게 했다.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보는 과정이었다.


둘째 달에는 ‘25살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주제로 미래를 그려보게 했다. 막연했던 미래가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셋째 달에는 선도위원이 전달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작성했다.


넷째 달에는 1365 자원봉사 포털에 가입해 청소년 자원봉사를 1회 진행하도록 했다.


다섯째 달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했다. 평소 하지 못했던 마음속 이야기가 글로 전해졌다.


여섯째 달에는 부모님 또는 선도위원과 함께 영화나 공연을 관람하며,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를 느끼게 했다.

6개월이 지나갈수록 이 학생의 표정과 말투,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도 짧던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 청소년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많은 경우 문제의 시작은 가정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부모의 이혼, 잦은 다툼, 정서적 단절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다. 반대로 부모의 사랑과 안정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가정은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안전망이자 가치관이 형성되는 첫 공간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청소년 범죄예방위원의 역할은 단순히 재범을 막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다시 찾도록 돕는 일이다. 처벌이 아닌 기회를 통해, 한 청소년의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나는 아이를 믿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 믿음을 6개월 동안 놓지 않았다. 첫 믿음을 끝까지 지켜낸 시간이었다.

6개월의 동행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한 아이의 미래를 넘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작은 시작이 된다.


처음 건넨 약속을 끝까지 지켜내는 일. 그것이 우리가 함께한 6개월의 의미였다.


함께 한 약속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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