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위기로 굳어지는 청년층 고용 한파,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시민일보
siminilbo@siminilbo.co.kr | 2025-09-14 12:24:19
극심한 내수 부진과 경기 한파가 장기화하면서 청년층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는 가운데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세대가 일자리도, 구직 의욕도 잃은 채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 최근 청년층의 고용 한파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뿐 아니라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3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Pandemic) 위기 시절에 못지않다. 청년 일자리를 둘러싼 취업환경이 전례 없는 미증유(未曾有)의 복합위기로 치닫고 있다.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이 겪고 있는 위기가 갈수록 거대화, 복합화, 일상화하는 가운데 하나의 재난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재난이 파도처럼 연쇄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온다는 ‘블랙 타이드(Black tide)’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달 ‘구인 배수(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 │ 신규구인인원/신규구직인원)’가 0.44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8월 0.26 이후 올해 5월 0.37에 이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구인 배수는 신규 구직 인원 대비 구인 인원의 비율로, 구직자 1명당 일자리가 0.44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0에 가까울수록 취직난, 1보다 크면 구인난이란 의미다. 지난 9월 8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8월 고용행정 통계로 본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보험 상시가입자는 1,562만 7,000명으로 전년 동월 1,522만 5,000명 대비 18만 2,000명(1.2%↑) 증가했다. 가입자 증가세는 5개월 연속 18만 명대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였지만 ‘구인 배수’는 0.44로 전년 동월 0.54보다 0.1포인트 낮아져 1998년 8월(0.2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규 구인은 15만 5,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만 7,000명(-15.0%↓) 감소했으나, 신규 구직은 35만 2,000명으로 1만 4000명(4.1%↑) 증가해 구직난이 심화했다. 지난 8월 고용보험 상시가입자는 1562만 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8만 2000명(1.2%) 증가했다. 산업별 고용보험 상시가입자 현황을 보면, 서비스업은 지난달 고용이 20만 9,000명 증가한 데 반해 제조업은 1만 명, 건설업은 1만 8,000명이나 줄었다. 건설업계 불황 등 경기 부진이 일자리가 부족한 주원인으로 보인다. 특히 제조업 구인이 1만 6,000명 줄며 전체 구인 감소의 59%를 차지하는 등 제조업 고용상황이 어렵다. 한편 구직급여 신규신청자는 8만 1,000명으로 전년 대비 5,000명이나 줄어들었지만, 지급자와 지급액은 소폭 늘었다. 구직급여 지급자는 63만 8,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 늘었고 지급액도 74억 원(0.7%↑) 늘어난 1조 329억 원을 기록했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0일 발표한 ‘2025년 8월 고용동향’을 봐도 지난달 15세 이상 취업자 수는 2,896만 7,000명으로 전년 동월 2,880만 1,000명보다 16만 6,000명(0.6%↑) 늘었지만, 증가세를 견인한 연령대는 60세 이상 고령층(40만 1,000명)이었다.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357만 1,000명으로 전년 동월 378만 9,000명보다 21만 9000명이나 줄어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15~64세 고용율은 69.9%로 8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5.1%로 전년 동월 46.7%보다 1.6%포인트나 급락했다. 게다가 한창 일할 나이인 30대는 취업자 수가 10만 명 가까이 늘어난 한편으로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그냥 쉬었음’ 인구가 1만 9,000명 증가한 32만 8,000명에 달해 8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에 실패한 청년층의 고용시장 소외 장기화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유독 청년세대가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은 경기 둔화로 제조·건설업 고용이 얼어붙은 데다 대기업들의 경력직 채용 선호로 대졸 신입 채용 문이 그만큼 좁아졌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대기업 10곳 중 6곳은 신규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업이 62.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규채용계획 미수립 기업이 38%이고 채용이 아예 없는 기업이 24.8%에 이른다. 채용이 없는 기업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17.5%와 비교해 7.3% 포인트나 증가했다. 내수시장 침체와 글로벌 통상질서 변화가 기업들의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세대의 노동시장 이탈 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를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 중 채용 계획이 아예 없는 기업이 팬데믹 위기가 한창이던 2020년보다 많다. 게다가 하반기 채용 계획을 세운 기업들조차도 10개 중 4개꼴로 작년보다 채용 인원을 줄이겠다고 한다. 가뜩이나 바늘구멍이던 대기업 취업 문은 더욱더 좁아진 것이다.
이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내수 부진이 고착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미국발(發) 관세 폭풍이 거세지고 산업계가 우려하는 법안의 입법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의 신규 고용 여력이 위축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건설·토목(83%), 식료품(70%), 철강·석유화학(69%) 순으로 채용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는 비중이 높았다. 내수 부진과 경기 침체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노란봉투법’, 미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다 대졸 신입 대신 경력 채용으로 방향을 트는 기업이 늘면서 청년층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렇다 보니 일할 의지를 잃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청년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구직활동도,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다.’라는 젊은 청년층(15∼29세)이 44만 6,000명에 달하고 20대 청년(20∼29세)은 43만 5,000명에 달한다.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5.1%로 16개월 연속 내리막을 그리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 하락추세(趨勢)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18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실업자 16만 2,000명보다 무려 2만 2,000명(13.6%↑)이나 늘어났고,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4.9%로 전년 동월 실업률 4.1%보다 0.8%포인트나 증가했다.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에 허덕이지만 대·중소기업, 정규·비정규직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무작정 청년들의 등을 떠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직된 고용 시스템 때문에 가뜩이나 채용을 꺼리던 기업들은 파업 조장 우려가 큰 ‘노란봉투법’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자 아예 로봇·인공지능(AI)으로 비숙련 인력을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실정이다. 기업들은 AI 자동화에 눈을 돌려 집중투자하고 있고 사람들은 디지털노마드((Digital Nomad)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들이 인건비를 절감하고 업무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일상 반복 업무를 ‘Chat GPT’,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 │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 등으로 AI 자동화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여당은 노동 경직성을 더 악화시켜 청년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주 4.5일 근무제, 정년 연장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업들은 신규채용을 하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늘리지 않겠다는 이유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및 기업 수익성 악화 대응을 위한 경영 긴축을 56.2%로 가장 많이 꼽았다. 기업경영에서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는 위험이지만 올해는 어느 해 보다도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만 보인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그렇고, 현 정부의 친노동 정책도 불안요소다.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기존의 사업조차 보수적으로 대응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가뜩이나 취업 한파를 겪고 있는 청년세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작금의 경제여건은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에서 먼저 경험을 쌓으라고 권할 여건도 아니다. 내수·수출의 부진으로 저성장 장기화가 지속하고 있지만, 경기 부진의 엉킨 실타래는 청년 고용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고용이 늘어야 수입이 늘고 소비가 살아나며 다시 기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어서다. 중소기업·비정규직과 대기업·정규직 간의 임금 및 고용 안정성 격차가 상당하고 칸막이까지 견고한 노동시장 이중구조에서는 한 번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이직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가 결단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고용 한파가 구조적 위기로 굳어지고 있다는 것은 국가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청년들의 경력 개발을 위한 지원과 대책 마련에 주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이 경력직만을 선호하는 여건도 서둘러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고용이 늘어야 소비가 살아나고 경기 회복도 기대할 수 있다. 기업이 채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직된 고용 환경을 과감히 개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경력직 선호로 취업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들을 위한 경력 개발 대책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인공지능(AI) 3대 강국, 잠재성장률 3%, 국력 세계 5강이라는 이른바‘335 공약’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 │ 엇박자)’와 함께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과제 중 하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임금과 저임금의 격차는 단순한 차이를 넘어 사회적 불균형과 기회의 단절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첫 직장에서부터 불균형을 체감하고, 중소기업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서둘러 고용의 유연성 높이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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