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복도와 계단, 편리함의 이면에 가려진 ‘재앙의 통로’

오왕석 기자

ows@siminilbo.co.kr | 2025-10-13 16:21:45

▲ 송탄소방서 청문인권팀장 황창환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보금자리다. 한 세대의 사소한 행동이 이웃의 일상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서로를 향한 배려와 책임의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최근 많은 아파트에서 불거지는 '피난통로 적치물' 문제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유모차, 자전거, 분리수거함, 택배 상자 등 잠시의 편의를 위해 내놓은 물건들이 화재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생명의 통로를 막는 치명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산다.

 

실제로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복도와 계단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각종 짐으로 비좁아져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둠과 연기 속에서 대피는 지체될 수밖에 없고, 적치물에 걸려 낙상 사고를 비롯한 2차 피해가 더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심지어 복도에 쌓아 둔 물건들은 화염의 확산을 돕는 연료(가연물)가 되어 더 큰 피해를 부르기도 한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제16조 제1항 제2호는 복도와 계단 등 피난시설에 물건을 쌓아두거나 장애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1차 적발 시 100만 원, 2차 200만 원, 3차 이상 위반 시에는 300만 원이 차등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제재를 떠나, 이는 우리 공동체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이러한 위험한 상황이 단속과 계도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공용 공간은 개인의 편리를 위한 장소 혹은 개인의 창고가 아니다. 자전거나 유모차는 세대 안이나 지정된 보관소에, 택배는 가급적 바로 수령하고, 쓰레기는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맞춰 배출하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을 줄이자는 차원을 넘어, 위급한 순간에 나와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 수칙이다.

 

이제는 개인의 편리함보다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다. 우리의 복도와 계단이 재앙의 통로가 아닌 안전한 대피로로 유지될 수 있도록, 지금 바로 문을 열고 주변을 돌아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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