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귀와 닫힌 귀
편집국장 고하승
시민일보
| 2002-07-02 17:40:50
{ILINK:1} 난처한 입장에서 솔직히 시인해야할 일을 시인하지 못하고 엉뚱한 이야기로 얼버무리는 것을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라고 한다. 이는 맹자의 양혜왕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날 맹자가 제선왕(齊宣王)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왕의 신하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초나라에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와보니 그동안 친구가 처자식을 돌봐주지 않아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런 친구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구를 믿고 처자식을 맡겼는데 그들을 외면하고 굶게 만든 사람이라면 당장 절교를 해야 합니다. 그는 친구를 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 맹자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다.
“사사(士師, 오늘날 법무장관)가 그 부하를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당장 파면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난처한 듯 좌우를 둘러보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현장을 얼버무리려 했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다.
만일 왕이 이런 질문을 미리 예상했더라면 앞의 질문에서 “버려야 한다”거나 “파면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대답대로라면 왕이 “그만두어야 한다”는 대답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만일 앞에서 “친구가 잘못했다. 고치도록 해야 한다”거나 “사사가 잘못했으니 그가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대답을 했다면, “그것은 짐의 잘못이니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 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뒤늦게라도 “앞의 말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고치도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하고 곧바로 정정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제 민선 3기 단체장 취임식이 자치단체 곳곳에서 열렸다. 이로써 민선3기 지자체가 공식적인 출범의 돛을 올린 것이다.
단체장의 역할은 지대하다. 사실상 지자체 인사에서 독선과 전횡을 부려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사업과 관련, 상당한 권한이 주어지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인의 장막이 펼쳐져 정작 귀담아 들어야할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평소에 겸손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사람도 쓴소리를 귀찮게 여기는 권위적인 모습으로 변하기 십상다. 이렇게 되면 귀가 닫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좌우이언타(顧左右而言他)’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처럼 어리석은 방법이 또 있을까. 잘못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요하되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시인하고 그 잘못을 고치면 그뿐이다.
그런데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를 귀찮아하고 외면하면서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늘 듣는 귀를 열어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이 평범한 진리가 신임단체장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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