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그놈

편집국장 고하승

시민일보

| 2002-07-13 17:30:29

{ILINK:1} 꿩 닭 공작 등 대부분의 새들은 수컷과 암컷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다. 하지만 까마귀란 놈은 암-수 모두 꼭 같이 검기 때문에 어느 놈이 수컷이고 암컷인지 구별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은 ‘누가 까마귀의 암컷과 수컷을 구별할 수 있으랴’하는 뜻으로 이는 “서로 잘났다”며 남을 음해하고 헐뜯지만 알고 보면 남을 끌어내리고 자신을 높이기 위한 술책일 뿐,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다.

이 말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편 제 5장에 나온다.

“산을 보고 낮다고 억지소리 하는 사람이 있지만, 산과 언덕이 평지보다 높은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이런 거짓된 말을 하고 있는데, 어째서 막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안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까마귀 암-수를 구별할 수 없듯이 누가 위대한 사람인지 아는 자가 누구이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오늘부터 8.8 재보선 후보 공천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재보선 체제로 전환한다고 한다.

양당은 특히 이번 선거가 재보선 사상 가장 많은 전국 13개 선거구에서 열리는 ‘미니 총선’ 규모인 데다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의 실질적인 전초전 성격을 띰에 따라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어서 선거전이 더욱 치열한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이미 13일 권력형 비리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제 등이 실시되지 않으면 대통령 탄핵도 불사한다는 강경 방침을 천명, 확전의 불을 댕겼다.


한나라당은 또 7.11 개각을 ‘DJ 친정강화 내각’으로 규정, 장 상 총리서리에 대한 혹독한 인사청문회를 예고하고, 교체된 일부 장관의 경질배경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임시국회에서 강도높게 추궁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안기부자금 총선 유용과 세풍사건, 아들 병역의혹 등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와 관련된 `5대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와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역공을 취했다. 또 민주당은 한나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들의 출신지역을 거론하며 “9명중 7명이 영남출신으로, 그 어떤 정권도 이만큼 싹쓸이 인사한 전례가 없다”고 공격했다. 심지어 같은 당 공천신청자끼리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치열하다. 온갖 험담과 비방이 난무하는가하면, 상대를 깎아 내리기 위한 허위사실유포도 서슴지 않는다.

서울의 어느 지역구에서는 현역 위원장이 소위 거물급 인사가 공천되는 것을 노골적으로 방해하면서 자신의 입지 굳히기에 나섰다가 뜻 있는 당내 인사들로부터 면박을 당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이런 소리들을 듣다보면 정말 까마귀의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누가 우리의 대표로 합당한 사람인지 판단내리기 어려울 때가 있다.

실제로 선거판을 들여다보면 온통 까마귀들 세상이라 암-수를 구별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그가 최근 정치인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왔는가. 정치인 이전에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가. 그의 전력에 우려할만한 사항은 없는가. 과연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자인가. 우리의 대표로서 소신껏 대의를 말할 수 있는 자인가. 정말로 참신한 인물인가.

유권자들은 이런 점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 까마귀 암-수를 구별하기는 어려워도 누가 우리의 대표로서 합당한지는 식별할 줄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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