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등급제 금지와 고교종합평가제 도입

이 주 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4-10-21 20:13:20

{ILINK:1} 최근 고교등급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교원단체와 시민단체의 요구를 등에 업고 교육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대학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올해 수시 1학기 모집 탈락 학생들의 대규모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고 현재 진행중인 수시 2학기 모집이 파행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교육부가 올해 8월26일 대학수능시험의 성적을 등급(9등급)만 제공하는 동시에 내신(학교생활기록부)의 반영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08년 입시안을 발표하면서 촉발되었다. 이 방안의 취지는 대입에서 내신의 비중을 높여서 시험성적이 높은 학생들만 우수하다는 개념을 바꾸어 보겠다는 것이지만 결정적인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의도적으로 낮추어 대학들이 수능 대신 내신을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도록 유도하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실패할 것이다. 수능 성적을 9등급으로 하더라도 최상위 등급 학생들의 점수 올리기 경쟁은 완화될 수도 있으나 나머지 학생들의 경우에는 한 단계 나은 등급으로의 경쟁이 오히려 더 강화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수능시험의 실질적 변별력이 낮아지는 부문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대학이 내신반영을 높이는 쪽으로 가는 않고 오히려 면접, 논술 더 나아가 본고사 부활까지 모색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즉 교육부가 제시한 방안만으로는 대학이 내신의 비중을 높일 유인이 없는 것이다.

둘째, 내신제도가 1980년 처음 도입된 이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내신에 있어서 고교 간 학력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규제 때문이다. 고교 간 학력 차이가 엄연히 있는 상황에서, 대학들에게 모든 학교의 상대석차를 가감 없이 동등하게 적용하라고 규제하였기 때문에, 대학들로서는 이로 인하여 유용성이 없어진 내신보다는 당연히 다른 선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내신의 비중 확대를 목표로 한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학 입시에서 고교 간 학력 차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셋째, 결국 대학이 자율적으로 내신 반영 비중을 높일 유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예상될 수 있는 것은 교육부가 대학들을 매우 강도 높은 통제 수단을 통하여 내신 비중을 높이도록 강제하는 방식을 택할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가 마녀사냥 식으로 고교등급제 의혹을 받는 대학들을 조사하는 것도 결국은 정부가 새로운 입시 제도를 대학의 자율이 아니라 정부의 힘에 의하여 적용하려는 의도를 반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교등급제의 문제는 정부가 2008년 대입안을 졸속으로 발표하면서 촉발되었다. 대학입시에서 내신의 비중을 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교 간 학력 차이를 인정하여 내신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첫째, 고교등급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법령에서 이를 금지하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분명히 학생들이 어느 지역에 사느냐 혹은 선배의 성적에 의하여 입시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등교육법 또는 시행령에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조항을 삽입하여 학교 현장에서 앞으로 더 이상 혼란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 대학이 입시에서 지원 학생들의 고교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이를 내신에 반영하는 “고교종합평가제도”를 허용하여야 한다. 고교종합평가제도의 경우 대학들이 고교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에 대해서 단순히 학력 차이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 특기적성 교육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따라 학생들이 어느 고교에서 어떠한 차별화된 교육을 받았는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내신에 반영하는 제도를 말한다.

셋째, 고교종합평가제가 가능하도록 대학에 대한 지원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 번 2008년 대입안에 포함되어 있는 입시사정관제도는 시급히 도입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경우 입시사정관이 일년 내내 고등학교를 순방하면서 어떠한 고교의 어떠한 프로그램이 대학의 교육목적에 부합하는 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며 입학전형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입시사정관 제도가 빨리 도입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원이 있어야 한다.

넷째, 고교종합평가제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고교에 대한 학교정보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 고등학교의 학업성취도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개별 학교마다 각 학교의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여야 한다. 최근 교육부는 대학의 교육여건 및 학교 운영상태를 알 수 있는 지표를 공시하는 “대학정보 공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고교정보 공시제”를 도입하여, 학부모와 학생이 알고자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들도 이를 근거로 입학전형에서 고교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현재 교육부가 추진 중인 입시안은 2008년부터가 아니라 빨라도 2010년 이후 적용하는 것으로 연기하여야 한다. 사실 2003년에 2005년 입시안이 개정되어 올 겨울 수능부터 적용되기로 되어 있다. 2005년 입시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2008년 입시안을 확정지으려 하는 것은 지나친 졸속 행정이다. 교육부가 또 다시 이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론을 수렴하여야 한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