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갈릴레오는 유죄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

시민일보

| 2006-03-15 19:44:27

{ILINK:1} 지난 8일 동국대에서 열리는 강정구 교수 천막강연을 갔다.
강연에서 무언가 들으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당한 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항의 표시를 위해서이다.
학교로 가는 차안에서 가슴속이 참 답답하였다.
이 무슨 구시대적 사태인지 어이가 없어 어디부터 어떻게 발언을 해야 할지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증명하라면 보통 사람은 누구나 좀 답답해한다.
마치 ‘루트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라’는 문제만큼이나 막막하다.
루트 2가 무리수인 것은 너무 자명한 것 아닌가? 그걸 뭐 증명씩이나 하는가....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느꼈던 막막함과 동일한 마음이다.
지난 강정구 교수의 학문적 주장을 잘 모른다.
그건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내가 살아가는데 별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해방직후의 현대사에 대해 주류학계에서 주장하는 것과 다른 주장을 하였다는 것 정도는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이 별것도 아닌 사안이 사회적 쟁점이 되어 크게 번지는 것이 나는 이해가 안된다.
그것이 국가보안법 위반이어서 강 교수가 처벌받아야 하고, 검찰총장이 불구속 수사 지휘를 검찰독립을 후퇴시킨 일이라고 항의하며 물러나야 할 사안이고, 경제계의 어떤 사람이 나서서 강 교수의 강연을 들은 사람은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선언할 사안이고, 기어이 그를 강단에서 퇴출시켜야 될 사안까지 되는 것이 못내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강 교수의 주장이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지 학문적 논거를 가지고 어떠한 주장이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의 학문적 발전과 그에 따른 인간생활의 발전은 이런 자유의 토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믿음이다.
성리학 일변도의 조선시대에 실학사상을 들고 나온 것이 이단시되기도 했지만 당대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단적인 주의주장이 용납되었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너무나 촌스러워 말하기조차 껄끄럽다. 이미 이것은 참신한 주장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하여 진부하기까지 하다.
시뻘건 얼굴로 입에 상스러운 욕을 해대며 흥분하여 강연장을 실력으로 망쳐버리는 우익단체 소속 사람들이 용납되는 우리사회의 이 광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사찰의 취지에 맞게 좌익 장기수 무덤 몇기를 경내에 두었다고 묘비를 훼손하고 파묘까지 해버리는 이 광기는 도대체 뭘까....

그들이야 그렇다고 치고, 대학당국의 퇴출조치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상식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대학당국자들은 적어도 학자 아닌가?
그들도 장사꾼이고 얼굴이 벌개져서 흥분하는 사람들인가?
이들은 진리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깊은 성찰이 없는 사이비 학자란 말인가?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대해 종교재판을 통해 굴복시켰던 15세기의 그 어이없는 사태가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설사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틀렸다 해도 그 주장 철회를 위해 종교재판을 하는 것은 꼴불견 중의 꼴불견이다.
그 꼴불견이 21세기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인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대학은 이성과 합리, 진리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눈치와 돈벌이, 자본의 논리가 난무할 뿐이다.
21세기 한국 대학은 갈릴레오에게 유죄 선고를 하였다.
대학당국은 후에 교황청이 그러했듯이 반드시 후회하고 사과하며 이 유죄선고를 번복할 날이 있을 것이다.
설사 강 교수의 주장이 학문적 가치가 없다하더라도 말이다.
강 교수는 다시 강단에 서야 하고 그의 주장은 학문적으로 논의되고 검토되어 가치를 인정받든 인정받지 않든 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과거 평화통일을 주장한 사실만으로 사형을 시키는 이 광기를 우리 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
평화의 댐 건설 모금과 같은 낯 뜨거운 반공 캠페인이 용납되지 않는 차분한 이성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이상 마녀사냥과 메카시즘의 광풍은 우리사회에 필요하지 않다.
아니 우리사회를 퇴행시키는 만행이다.
(이 글은 이영순 의원 홈페이지에 있는 ‘이영순의 노트’에 게재돼 있습니다.)

(위 글은 시민일보 3월 16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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