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신조와 요시다쇼인(吉田松陰)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
시민일보
| 2006-09-21 19:15:52
{ILINK:1} 마침내 예상대로 아베신조 관방장관이 자민당 총재에 압도적인 표로 당선되었다. 곧 총리에 선출되어 역대 최연소 일본총리가 탄생할 전망이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대북강경책을 제시하여 새로운 일본정치의 영웅으로 떠오른 아베신조씨는 태평양전쟁의 전범이었던 기시노브
스께의 외손자, 아베신타로 전외상의 아들로 알려져있다.
아베신조는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야마구치현은 막부타도를 통한 메이지유신을 주도했던 사쓰마번(현재 가고시마현)과 죠수번, 즉 삿초중의 하나인 죠슈번을 말한다. 이토오 히로부미도 이곳 출신이다. 아베신조씨가 존경하는 인물이 같은 고향출신인 요시다 쇼인이다. 외국 정치인으로는 윈스턴 처칠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기가 존경하는 정치인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요시다 쇼인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30년 죠수번에 태어난 요시다는 난학이 풍미했던 세계를 향한 일본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키에 유학하여 서양열강을 보면서 일본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사쿠마쇼잔에게 사사하고 1854년 페리내항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껴 직접 정세를 살피려고 시모다에서 밀항하다가 체포된다. 옥중에서 저술한 유수록(幽囚錄)은 아돌프히틀러의 나의투쟁(마이네캄프트)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주요내용은 조속히 무비를 정비하고 홋까이도를 개간하여 제후를 봉하고 류큐(오키나와)를 타일러서 내지의 다른번과 같은 위치에 앉히고 조선을 공격하여 인질을 넣고 공물을 바치는 것을 옛 성시때와 같이하게 한 다음 북으로는 만주, 남으로는 대만, 루손 등을 손에 넣자는 말이다.
일본에서 자주 인용되는 정한구상을 나타내는 쇼인이 형 스기 우메타로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러시아와 미국의 강화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이를 깨서 오랑캐들 사이에 우리의 믿음을 잃어서는 결코 안된다. 오로지 규정을 엄수하여 신의를 두텁게 하면서 그동안 국력을 길러, 취하기 쉬운 조선, 만주, 중국을 쳐서 거느리고, 교역으로 러시아에 잃는 것은 또한 토지로 조선과 만주에서 보상해야 한다” 그외에도 요시다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글들이 있다. “조선을 취하고 만주를 거두고자 원한다면 군함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요시다는 국체(國體)를 강조하였다. 출옥한 쇼인은 생가에서 금고생화를 하면서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을 차려놓고 문하생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키는 공부에 몰두한다. 그의 일본찬미론의 핵심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듭된 역성혁명으로 왕국이 교체된 중국에 비해, 건국 후 황통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점에서 일본의 우수성이 나타나 있으며 그런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체제야 말로 일본 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쇼인의 사고에는 명나라 신하를 자처한 아시카가가 세운 무로마치막부나 이를 승계했다고 판단하는 도쿠카와 막부는 천황중심의 국체를 파괴하는 비일본적인 것으로 정리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임진왜란이후 도쿠카와 막부와 조선간의 외교재개에 대해서도 천황과 장군의 군신관계를 명시하지 않은 채 이루어진 외교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은 진구황후(神功皇后; 자신들 주장으로 신라를 정벌했다는 전설적인 황후)와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이다.
진구황후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야말로 황도(皇道: 황제가 정치를 하면서 지켜야 할 도리)를 분명히 하여 국위를 떨친 자로 신주의 광휘라고 할만한 자로 칭송하였다. 그가 1856년 구사카겐스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그 영역을 존중하여 조약을 엄수함으로써 두 오랑캐를 속박하고 그 사이를 이용하여 에소를 개간하고, 류큐를 거두며, 조선을 취하고 만주를 분쇄하고 중국을 제압하고 인도에 임함으로써 진취의 기세를 떨치고, 그럼으로써 물러서서 지키는 기초를 굳혀, 진구가 완수하지 못한 바를 완수하고, 도요토미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룩하는 것이 상책이다” 섬뜩한 말이다. 일본의 조선, 만주, 중국침략전쟁과 인도지나반도와 태평양전쟁의 구상이 이미 요시다 쇼인의 철학 속에 각인되어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쇼인은 항해통상에 의한 군비확충과 적극 개국하여 양이하고 국체론을 통한 대외정벌론으로 정리되어 있다. 미일통상조약이 천황의 칙허를 얻지 않고 체결된 것을 알자 쇼인은 막부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고, 막부집정관인 노중 마나베 아키카쓰의 암살을 획책한다. 이로 인해 노야마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안세이대옥때 애도에 송치되어 29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된다. 마치 일본우익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미시마유끼오를 연상케하는 삶이다. 이런 요시다 쇼인의 삶이 젊은 아베신조 신임 자민당 총재의 고향선배로서 강렬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아베신조씨가 요시다쇼인을 존경한다면 요시다쇼인의 어떤 사상, 무엇을 존경한다는 것인지, 요시다쇼인의 정한론 만주중국침략론, 대외정벌론, 존황양이 국체론을 존중한다는 것인지 밝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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