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PSI에 참여중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
시민일보
| 2006-10-19 20:16:59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UN)은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을 준비중이다. 근거는 UN헌장 제7장 41조. 우리들이 염려하는 군사적 제재는 제42조이다. 정부의 공식입장은 제42조의 군사적 제재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준비 중인 결의안 초안은 제41조와 제42조의 절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1조의 비군사적이 아닌, 그렇다고 42조가 말하는 전면적인 군사적 제재도 아닌 이 둘의 중간 단계인 ‘준’군사적 제재라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번 결의안의 핵심내용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결의안의 고갱이는 PSI라는, ‘일종의 사실적 측면에서의 군사적 조치’가 핵심일 수 있다. 그래서 논쟁이 시작된다.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가 PSI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인가. 일부 언론들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근거를 제시한다.
지난 10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은 “PSI에 부분적으로, 사안별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PSI 참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협의를 봐가면서 정부의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
외교통상부의 입장을 그대로 ‘번역’하자면, ‘지금까지는 PSI에 참가한 적이 없지만, 지금부터 참여할 것이고 UN의 협의를 따르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필자는 분노한다. 이 나라는 ‘우리’ 나라이지 ‘외교부 관료들’의 나라가 아니다.
이것이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실상이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 그랬고, 반환기지 환경오염치유협정이 그랬고, 전략적 유연성 인정이 그랬고, PSI도 역시 그랬다. 정부가 이런 사실을 숨길 만한, 아니 속일 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5월 26일자 노틸러스 연구소의 보고서 ‘미국의 PSI 추진실태’(‘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in Perspective: 2006. 5. 26’)를 보면 PSI에 참가한 80여개국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처럼 ‘부분적으로 참가’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가’건 ‘참여’건, ‘부분참가’건 ‘전면참가’건 결론은 참가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우리는 고위급전략대화에서 공식참가를 전면적으로 확인해 주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UN 안보리 협의에 따라 PSI 참여를 결정하겠다는 말은 미국의 ‘PSI 공식화 전략’에 따라 ‘이행’(implementation)을 실천하는 것이고, 그간 정부가 ‘이행’이라는 용어의 중요성을 회피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기만이다. 사실 정부는 고위급 전략대화 이후 PSI라는 용어가 정면으로 들어가 있지 않고, 그 용어의 개념을 풀어사용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예 이 부분에 대한 부연설명을 생략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론들조차도 올 1월 고위급 전략대화에서 PSI에 대한 공식합의가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난 11일 이규형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기자들과의 비공식 오찬을 겸한 브리핑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PSI 관련 미 측의 8개 요구 중 5개에는 우리가 ‘참가’하고 있고 3개 남은 걸 어떻게 할까이다”
필자는 이 발언록을 입수하게 됐다.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국민만 모를 뿐, 관료들은 다 알고 있다. PSI에 대한 참여 거부는 이제 있을 수 없는 기왕의 사실이 되어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 핵실험의 결과로 PSI를 당하는 것과 PSI를 당하게 된 것을 비관하여 남한을 불신하게 된 것, 이것은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모여 북한의 남한 불신을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일본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제출한 안보리 대북결의안 초안은 결국 PSI를 UN이 공식화하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10월12일까지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공식입장은 아직까지 PSI 확대참여를 결정한 바 없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입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지 장담할 수는 없다.
남은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민에게 이제라도 PSI 참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대한 정부 내 절차와 논의 과정들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는 UN 헌장 제41조의 조치내용이 ‘전부 또는 일부의 중단’이라고 표현되어 있음을 들어 최대한 우리에게 유리한 해석, 즉 일부에 대한 제재로 해석을 끌어내는 방법이 있고 여기에 중국의 동참을 호소하는 길이다.
한민족 운명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외교의 임무는 중하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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