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부족한 2%’

오경훈(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 부본부장)

시민일보

| 2006-10-30 16:29:52

{ILINK:1} 2000년 4월 총선을 한 달 반가량 앞두고 서울 양천을 지역(신월, 신정동)에 파견된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각종 당내 대소사를 겪다 보니, 우리 한나라당내에 실재하는 주요한 두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아주 거칠게 대별하면 ‘영남그룹’과 ‘수도권그룹’이 그것이다.

물론 다른 지역, 특히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하시는 호남과 충청 지역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당내 노선 경쟁과 갈등의 축은 ‘영남그룹’과 ‘수도권그룹’을 중심으로 전개돼 온 것이 사실이다.

당의 현 지도부와 직전 지도부의 출신 지역구를 따져 봐도 큰 줄기는 영남과 수도권이다. 현재 당의 유력 대선주자군들을 봐도 그렇다.

내가 체험한 바로는 ‘영남그룹’은 당의 ‘전통적’ 노선을 유지하는데 중점을 두는 반면 ‘수도권그룹’은 당의 ‘전통적’ 노선을 변화하는데 중점을 둔다.

물론 그러한 입장 차이가 반드시 개혁과 반개혁을 뜻하는 바도 아니고, 개개 인물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의 ‘전통적’ 노선의 유지와 변화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은 2002년 대선 이후 더욱 치열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왜 이런 노선 차이가 ‘영남그룹’과 ‘수도권그룹’을 중심으로 벌어질까?

언뜻 생각해 보면 각종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영남 주민들이 보다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수도권 주민들이 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표를 먹고 살 수밖에 없는’ 선출직들로서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을 따라가게 마련이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두 지역의 선출직들이 선거에서 느끼는 ‘절박함’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영남의 경우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이 낙승을 거두는데 당 노선에서 특별히 큰 변화를 이루어야만 할 ‘절박한’ 이유가 있겠는가? 수도권의 경우 상당수 지역구에서 5000표 이내로 당락이 판가름 나는데 당 노선을 반드시 고수해야만 할 ‘절박한’ 이유가 있겠는가?

나의 경우 2000년 총선에서는 3275표(3.95%) 차이로 지고, 2003년 재선거에서는 1086표(2.4%) 차이로 이기고, 또 다시 2004년 총선에서는 433표(0.42%) 차이로 졌다. 이러니 나에게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수적으로는 적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유동적인 중간층의 여론과 향배이다. 이들의 마음까지 얻어야지만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대선을 두고서도 이러한 딜레마는 되풀이된다.

아무리 현대 정당정치의 특징이 ‘중간화’에 있다지만, 당의 ‘전통적’ 노선을 모두 ‘좌로 한 클릭’하고 나면 보수주의 정당으로서의 우리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무엇이 남는가? 그렇다고 좌파 선동정치에 맞서 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집중하고 적극적인 변화에는 소홀히 한다면 과연 앞서 두 번의 대선에서 ‘부족했던 2%’ 중간층들의 표심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나로서는 아무리 표가 중요하다지만 보수주의 정당으로서 당의 정체성만큼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나 정권교체를 위해 중간층들의 마음을 끌어안기 위한 능동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나 모두 충분한 일리(一理)가 있어 보인다.

따라서 나는 우리 당의 대선주자들께서 한나라당이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정체성과 가치는 무엇이며, 국민들의 바램에 못 미쳤던 정책들은 무엇이었는지 적시하고 공론화하여 열띤 토론과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주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중구난방으로 터져 나왔던 당론을 명확하게 정립하여 실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겠구나 하는 비전을 국민들께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나는 우리 당의 대선주자들께서 현재 우리 한나라당의 왜곡된 의사결정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바로 잡아 줄 것을 기대한다.

2004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은 800만표를 얻었는데, 그 중 영남권에서 280만표, 수도권에서 410만표를 얻었다.

그런데 당선된 100명의 지역구 의원 중 영남권은 60명, 수도권은 33명이었다. 결국 전체 당득표 기여도에서 영남권은 38%, 수도권은 51%를 차지한 반면, 의총 발언력은 영남권 60%, 수도권 33%(전국구 의원은 제외)로 뒤바뀐 결과가 나타났다.

물론 당헌상 최고의결기구는 전당대회나 전국위원회이지만, 실제 일상적으로 당론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원내 의원들의 영향력이 결정적인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우리 한나라당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지지자들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에 표를 주신 지지자들, 5·31 지방선거에서 영남권보다 더 큰 압승을 이루어준 이 분들의 바램과 의사를 당론 결정과정에서 충실히 담아낼 수 있어야만 내년 대선에서도 이 분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