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말

박 영 규(한나라당 시흥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시민일보

| 2006-10-31 20:53:14

{ILINK:1} 최근의 간첩단 사건을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책의 제목이다. 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할 무렵인 1989년 여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쓴 글이다. 역사의 종점에 선 최후의 인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자유민주주의는 최후의 정부형태이다. 더이상 변증법적 역사의 발전은 없다. 여기가 정점이다. 고로 나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다”
후쿠야마는 거대한 공산주의 블록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뒤엎었다.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의 정점이고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진화는 없다고.
역사의 종말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진다. 지식인들은 좋은 싫든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실증적 체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도 후쿠야마의 논증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데리다와 같은 해체주의 철학자들을 들먹이며 후쿠야마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큰 반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주 토요일 협의회 부위원장의 혼사가 있어 서울교육문화회관에 갔었다. 거기서 내 지역의 여성 도의원 한 분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북한의 실상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녀는 최근 민간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평양에 다녀왔었다. “평양의 유명한 호텔에서 숙박을 했는데 행사가 끝나고 밤 10시쯤 꽤나 높은 층의 객실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니 불켜진 곳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전력 사정이 않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는데 조밥과 강냉이 죽, 깻잎 4조각, 생선 한 토막이 전부였다.” 외국 손님들을 접대하는 특급호텔의 사정이 이러한데 북한 주민들의 사정은 어떠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의 개인 재산은 4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김정일은 프랑스산 헤네시 코냑의 세계 최대 구매자이며 벤츠 S 클래식이라는 고급 승용차를 200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식탁에는 늘 캐비어와 같은 값비싼 음식들이 오르고 있다.
북한을 여러차례 들락거릴 정도의 고정간첩이면 남북의 현실에 대한 교차 체험도 해보았을 법한데 아직도 뇌리에 공산주의가 지상낙원이라는 신념이 지워지지 않은 것일까?
헐벗은 북한 주민과 황태자같은 생활을 하는 김정일을 눈으로 보면서도 자본주의적 모순이 공산주의의 실상보다 더 큰 문제라고 여겨질까? 참으로 알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북한의 김정일에게 충성서약을 하며 일심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어 남한 사회의 안전을 헤치려 하는지. 더 선한 세상, 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납득될 수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일심회라는 조직간첩단 사건에 386운동권들이 연루된 의혹이 있다는 보도가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가담한 정도야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충격적이다. 김승규 국정원장이 우리 사회의 안보불감증이 심각한 상태이며 간첩활동의 실상이 충격적이라고 한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이다. 심리학적 눈을 가지고 잘 한번 살펴 보자.
“북핵문제로 시끄러운 이때에도 ‘남북 분단상황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양국(한국과 아제르바이잔)이 모두 자기 스스로 분단을 택한 것도 아닌데 분단의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좋아하는 사치품이라고 해 매일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철갑상어알 ‘캐비어’는 카스피해를 낀 아제르바이잔에서 매우 흔하다.”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여행담의 한 토막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글의 뉘앙스에서는 운동권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외세에 의한 분단, 분단의 고통은 우파 지식인들이 잘 쓰지 않는 문구다. 김정일이 좋아하는 캐비어가 흔하다는 식의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다른 글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의 국정브리핑 내용이다. 담담하게 사실 위주로 기술을 했어야 하는데 주관적 평가가 강하게 개입되어 있다.
청와대의 386참모들이 김승규 국정원장의 사임을 종용했다는 기사도 쉽게 흘려버릴 수 없다.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동경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문제다. 맑스 이후에 대한 학습 부족이다. 정부와 청와대, 정치권등 공적 영역에 이념적 찌꺼기를 간직한 부류들이 존재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주요한 정책결정과 입법과정등에 일그러진 시각이 투사될 수도 있고, 그에 따라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감한 시점에 방북을 감행한 민노당 지도부들도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역사는 끝났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