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냐, 폭동이냐

전 대 열(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시민일보

| 2006-11-26 15:37:27

{ILINK:1} 시위라는 말은 다중이 모여 의사를 발표하고 그 위세를 보이는데 목적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가 아니면 이런 목적으로 집회를 열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는 정부의 필요에 의해서 관권이 동원되어 모이는 집회 말고는 어떤 명분으로도 다중이 모이기는 어렵다. 철저하게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으로 집회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옥내집회는 그 규모 여부에 상관없이 신고하지 않아도 되지만 옥외집회는 원칙상 해당 경찰서에 신고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집회의 개념은 2인 이상이 모이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장소를 선점한 자가 있으면 신고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다. 얼마 전 매일처럼 시위가 벌어지는 곳에서 해당기관이 먼저 집회신고를 해버린 통에 막상 실수요자(?)들이 한 달 이상 그 자리를 사용할 수 없었던 넌센스도 벌어졌다. 집회신고를 선점한 후 실제로는 집회를 하지 않는 경우도 엄청나게 많다.

이러한 다중의 의사 표현은 어떤 효과를 바라고 행해지는 것일까. 그것은 당연히 힘의 과시다. 주장하는 바가 클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여야 효과가 배가된다. 우리는 전통적인 대규모 집회를 많이 경험한 국민이다. 필자의 체험만으로도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휴전반대 데모’에 동원되었다. 순전히 관권데모였다. 이러한 데모를 바탕으로 대학 시절에는 자유당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한 4.19데모에 앞장설 수 있었다. 관권이 가르쳐준 데모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여 관권을 쫓아낼 수 있었으니 이렇게 아이러니컬한 일도 있을까. 독재정권은 일반 민중이 모이는 것을 지극히 싫어한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불평이 나오고 정권에 이익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철저히 통제한다.

따라서 요즈음처럼 신고만 하면 자유롭게 모여 하고 싶은 말을 다할 수 있게 된 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가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뜻이지만 이로 인하여 뜻 아니 한 피해를 일반인이 입는다면 큰 문제다. 게다가 데모대의 숫자가 커지고 계획적으로 폭력화한다면 그 피해는 눈송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민노총을 필두로 한 한미 FTA반대집회는 그 명분을 스스로 ‘죽이는’ 역효과만 내고 끝났다. 7만여 명이 전국 곳곳에 분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이 집회는 FTA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일반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저런 막무가내 집회를 하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하는 분위기만 조성했다.

폭력시위는 자신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데는 유리할 수 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불안감만 조성하는 것이며 그들의 주장을 믿을 수 없게 만든다. 폭력시위를 막는 경찰을 때려눕히고 도청과 시청에 불을 지른 행위를 찬성할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한미 FTA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한다. 나만이 옳다는 독선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단체나 개인에게서도 절대금물이다.

더구나 그들은 이 나라의 대표적인 노동단체요 농민단체다. 교사단체까지 가세했으니 그들의 입을 빌린다면 전 국민이 가담한 시위라고 허장성세할 만도 하다. 그들의 주장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표출했더라면 많은 국민들이 공감을 표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옳은 일이라고 해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정당성을 의심받게 만든다. 확신을 가진 문제일수록 그 주장은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인정받아야만 한다. 문제의 본질은 엉뚱한 데 있는데 다중의 위력으로 덮어 누르려고만 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국민을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길거리를 점령하여 모든 교통의 흐름을 막아버렸으니 당장 불편에 시달리는 국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정당한 주장이라고 자처하면서 이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관청에 불을 질렀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력을 마구잡이로 몽둥이질을 했으니 그들의 가족들은 누구를 원망할까.

이런 폭력시위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은 정부가 물렁해서다. 정부 스스로 원칙을 지키지 않고 말로만 ‘엄단’을 외치면서도 막상 현실에 들어가면 슬그머니 물러난다. 공권력이 약화된 원인이다. 지난번 미국에 원정데모를 했던 이들이 경찰의 폴리스 라인에 꼼짝없이 굴복한 것은 미국 경찰의 엄정함에 질려서다. 똑같은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망나니가 된다. 한국경찰은 우습게 본다. 이번 데모는 시위가 아니고 폭동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방치하면 더욱 극렬해질 것이 뻔하다. 폭력을 근절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여 재발되는 일이 없어야 국민은 안심한다. 폭력배보다 정부의 맹성이 더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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