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사론을 읽으면서(下)
한나라당 진 영 의원
시민일보
| 2006-12-19 18:56:50
서구의 근대발전이 무섭게 이루어졌으며, 산업혁명의 여파로 기술의 발전은 기차와 기선을 만들었고 여기에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전개되어 정치체제에서도 점차 일반 국민의 참정이 이루어지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서양의 힘이 동양을 넘보고 있는데도 양반·상놈을 말하면서 전통적 왕조사상에 사로잡혔던 그 시대의 지식인, 즉 척사론자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오늘의 잣대로 그 시대를 평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한 과거의 역사일수록 배울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강화도에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 즉 양헌수 장군의 외군 격침의 피나는 전투에서 군사들의 함성과 양헌수 장군을 가르쳤던 화서 이항로 선생의 척사론의 고함소리가 서로 교차되어 지금의 나를 한동안 혼돈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화서 이항로 선생의 척사론이 양헌수 장군을 애국의 전투로 달려가게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화서의 주장은 당시의 지배층이나 국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점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 것이 최고이고 남의 것은 다 나쁘다”고 말할 때, 그리고 “자기 것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는 것이 최상의 수호 방식이며 남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따른다. 과연 “그러한 방식으로 그 나라의 사람들과 사회를 온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우리 근대사가 보여주듯이 결국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고 백성을 식민지의 유민으로 만들었다는 그 결과만은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얼마 전 강화도에 또 다녀왔다. 초지대교를 건너면 바로 격전의 함성이 울려 퍼지던 초지진이 보인다. 차가운 바닷바람과 함께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옛날 그곳에서 벌어졌던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그리고 강화도조약의 현장을 떠올렸다. 급박했던 세계사의 흐름이 제일 먼저 우리나라로 밀려왔던 그 파고의 현장이 강화도이고 보면, 그날의 그 함성에서 나는 오늘은 물론이고 우리의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140여 년 전에 빚어졌던 그 침탈의 현장에 서서 나는 지금도 그때와 같이 밀려드는 세계의 거친 물결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록 함대의 포격으로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세계화의 물결이 서구 사상의 흐름을 실어오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강화도 앞바다의 파고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난이 싫다. 그 가난은 개인의 잘잘못도 있지만 보다 큰 원인은 국가의 정책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가난을 막아주어야 한다. 그러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자기만이 제일이라고 주장하고 밖의 세상과 담 쌓고 살아가는 조선시대의 그 닫힌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강화도 앞바다의 파고는 거센 바람과 함께 점점 높아지고 있다. 강화도의 역사를 되살린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강화도를 찾게 되고 그곳을 내 삶의 순례지로 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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