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 노동자에게 희망을…
배 일 도(한나라당 의원)
시민일보
| 2006-12-19 19:05:16
{ILINK:1} 앞으로 1년 후, 우리 국민은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을 할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어느 초인이 있어 이런 일을 다 너끈히 감당할까마는, 어떻든 이 한 문장 안에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의 전부가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겉으로 아무리 배우 뺨치는 표정을 지으며 굳은 맹세를 한다 해도 그 사람이 과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의지와 능력이 어느 정도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나요! 나를 보시오! 내가 바로 그 모든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소! 나의 의지와 능력은 그 누구보다 앞서 있단 말이오!”
강도(强度)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른바 대선주자로 불리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경쟁자에 뒤진다고 세상에 공표하면서 선거에 뛰어들 위인이 어디 있겠나.
저마다 목소리 높여 “나요!” 하니, 선택받고자 하는 그들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선택하는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온갖 ‘약속의 말’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희망을 광고한다. 그러나 지난날을 돌아보면 금석같이 보였던 그 ‘약속의 말’들은 배신의 칼로 변해 국민에게 상처와 절망을 주기 일쑤였다.
이제 우리는 희망을 찾아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선택받으려는 대선주자들은 ‘약속의 말’을 제대로 해야 하고, 선택하는 사람들은 참된 희망을 줄 사람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런 말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는 왜 그리도 어렵다는 말인가. 오죽하면 정치권을 가리켜 상식이 통하지 않는 데라는 조롱이 퍼부어지겠는가.
제대로 약속하고 제대로 뽑는다? 선서에 나와 있는 대통령이 할 일로 돌아가 보자. 그 문장 가운데 일반 국민들은 아마도 ‘국민의 자유와 복리(행복과 이익)의 증진’에 가장 관심이 높을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과 이익, 대선주자들의 약속은 이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에게 참된 희망을 줄 수 있고, 지지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의 자유와 행복과 이익을 증진시킬 것인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는데, 나는 이 땅의 1500만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정책임을 강조하고 싶다.
1500만 노동자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우선 노동자 자신은 물론이고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그 가족까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 민주주의의 장점 가운데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다수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동자가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또한 자영업자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이 희망을 갖는다는 뜻이 된다. 노동자가 절망에 빠져 있는데 장사가 잘 될 리 있겠는가. 또한 노동자의 희망 혹은 절망은 복지 문제, 교육 문제 등 국가적 과제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복지라 하면 사람들은 흔히 시혜 차원의 복지를 떠올린다. 즉, 국가가 세금을 거두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복지는 참된 희망을 줄 수 없다.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 가운데 더러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시혜를 받는 쪽은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결국은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들에게는 일이,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 산다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위기에 처해 있다.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사교육 광풍, 유행병처럼 번지는 조기 유학 바람, 전쟁에 비유되곤 하는 대학 입시 경쟁, 이 모든 기괴한 현상들이 왜 나타나겠는가. 대학을 나와야, 일류 대학을 나와야 이 사회에서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현상은 경쟁 사회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병적이다. 평범한 노동자가 희망을 갖고 살기 어려운 사회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희망을 갖기 어려우니 노동자는 등이 휘고 숨이 턱턱 막혀도 어쩔 수 없이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하며 자기 자녀를 사교육 현장 속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자녀만은 희망을 갖고 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렇듯 노동자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은 노동 문제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과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주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노동 정책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줄 수 있을까? 어떠한 노동 정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선택받으려는 대선주자들은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물음들에 설득력 있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약속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과연 어느 후보가 1500만 노동자에게 희망을 줄까? 참된 희망을 주는 후보가 경선과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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