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권(恩典權)은 정도(正道)로

이노근(노원구청장)

시민일보

| 2006-12-28 19:58:44

성종(재위:1469~1494년)은 선왕 예종(재위:1468~1469년)이 돌아가시고 근정전에서 즉위(1469년 11월 28일)하였는데 그때 이런 은전교서(恩典敎書)를 내렸다.

‘생각건대… 하늘이 돌보지 않아 세조대왕(재위:1455~1468년)께서 갑자기 제왕의 자리를 떠나시니 대행대왕(大行大王:예종을 말함)께서 슬퍼하다가 병이 되어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이제부터 11월28일 이른 새벽 이전의 모반(謀反)과 대역모반(大逆謀反), 자식이 조부모와 부모를 모살(謀殺)… 처첩(妻妾)이 남편을 모살한 것, 노비가 주인을 모살한 것… 다만 강도를 범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미 발각되었거나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를 모두 사면할 것이니….’

이러한 조선군왕들의 은전권(恩典權)은 임금 즉위식이나 세자 책봉식 등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자주 행사를 하여 선정(善政)의 모범을 보였다. 현대판 지성인들은 대한민국 헌법상 사면권(赦免權)이 마치 서양헌법(西洋憲法)에서 입양한 것처럼 착오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현대판 군주들이 심각히 경계해야 할 것은 그 사면권을 절대로 남용(濫用)하지 말고 정도(正道)로 행사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러할 때 후대의 백성들은 비로소 그 군주가 인정(仁政)을 베풀었다고 말할 터인데 현대판 군왕들은 그에 미치질 못하는 것 같다.

이제 본론(本論)으로 돌아가 다음 답사행로를 계속해 볼 터이다.

궁궐학자들은 궁궐을 외조(外朝), 치조(治朝), 연조(燕朝)로 분할하여 강론하기를 좋아한다. 알다시피 경복궁은 그 넓이가 광대하고 전각들도 빼곡하여 헤매기가 일쑤다.

“영감님! 도대체 우리는 지금 경복궁 어디쯤에 와 있어요?”

그 노교수는 내 질문을 접수하자마자 경복궁 고지도(古地圖)를 펼쳐 들었다. 바로 북궐도(北闕圖)였다.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에서 궁궐제도를 살펴보면 궁실(宮室)을 세 공간으로 구역하고 있어요… 회랑(回廊)으로 둘러싸인 3개의 중정(中庭)이 있는데…’ ‘그 중정의 남쪽구역을 외조(外朝), 중앙을 치조(治朝), 그리고 북쪽구역을 연조(燕朝)라고 하고… 그것을 소위 삼문삼조(三門三朝)라 말하지요… 외조(外朝)는 광화문~근정문 구간으로 궐내각사 등 정치·행정공간이고… 치조(治朝)는 근정문→사정전까지로써 거기에는 정전 근정전과 편전 사정전이 있으며… 연조(燕朝)는 침전으로 강녕전과 교태전 등이 있지요… 여기가 근정전 뒤편이니 치조구역에 해당하지요.”

여하튼 정전 근정전 구경을 마쳤으니 이제부터는 편전공간(便殿空間)으로 들어가 볼 터이다. 중앙에는 사정전(思政殿) 그 좌우에는 만춘전(萬春殿), 천추전(千秋殿)이 배치되어 있다.

편전공간에서 우리가 처음 만난 전각은 사정전이다. 사정전의 제원(諸元)과 용처(用處)는 무엇이더냐?

“사정전은 평상시 임금이 집무실로 쓰지요… 그러니까 그 곳에서 임금이 어전회의를 하거나 정책을 결정하지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多包式)에 겹처마, 팔작지붕이고… 임진왜란 때 불타고 고종 4년 1867년에 중건 했어요… 창덕궁(昌德宮)의 선정전(宣政殿), 창경궁(昌慶宮)의 문정전(文政殿)과 같은 용도이지요.”

그러나 사정전(思政殿)의 작명이념을 모르고 제대로 그 전각을 공부할 수 없다. ‘천하(天下)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잃어버린다’ 마치 군왕과 만조백관(滿朝百官)들이 상호간에 주문하는 경고 일거다.

사실 역대군주들이 잘못 생각하고 다르게 판단하여 나랏일이 얼마나 망가 졌던가! 임진왜란 직전 대일통신사(對日通信使) 두 분이 서로 다른 일본정세보고서(日本政勢報告書)를 내는 바람에 그 사정미학(思政美學)은 크게 훼손되었다.

동행한 노객은 그 흥분을 참아내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두 해 전… 그러니까 1590년 대일 통신사 두 분이 풍신수길(豊臣秀吉)을 만나고 왔을 때였지요… 그 때 통신사(通信使) 황윤길은 왜군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 하였고 통신부사(通信副使) 김성일은 그런 기색이 없다고 보고하였어요… 그 때 사정전의 주문을 생각해 봤다면 그 침략에 대한 방책을 미리 세웠을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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