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욕먹지 마세요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
시민일보
| 2007-01-01 18:39:22
{ILINK:1} “아버지 욕먹지 마세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 하던 말이다.
아버지는 외로운 분이셨다. 황해도에서 피붙이 하나 없는 남한으로 혈혈단신 오셨으니 정을 붙이지 못하셨던 것 같다. 더욱이 이모, 외삼촌 등 처가 쪽의 득세로 기를 피지 못하셨으니 그런 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는 술이었고,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항상 술에 젖어 계셨다.
퇴근길에는 꼭 건수를 만드셨다. 아들 1등 했다고 즐거워서 한잔, 황해도 고향 생각나서 한잔, 외롭다고 한잔,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잔, 아버지는 남한에서 이방인이셨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술병을 감춰도 동네 슈퍼에 아버지에게는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해도 어디서 구하셨는지 항상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길바닥을 당신 집처럼 여기기도 하셨고 때론 구르마로 실어 와야 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고향자랑 만큼은 잊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사고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어린 시절 난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거리에 다닐 때에는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 같았으며 동네사람들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를 욕하는 사람들은 더욱 미웠다. 처음엔 “우리 아버지 그런 사람 아니다”라고 설득도 해보고 싸우기도 해보았지만 결국엔 술에 취하신 아버지에게로 화살이 돌아갔다. 어머니는 “꼴도 보기 싫다 집에 들어오지 마라”하시고 나와 동생은 “우리 아버진 아버지도 아니다.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하지 않을 거다”라고 했지만 장남인 형은 “아버지는 아버지다. 얼마나 외로우면 그러시겠냐”며 우리를 설득하곤 했다. 단 하루도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이 없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 가족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조금씩 아버지의 외로움이 이해된다. 자신에게 대드는 아들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가족을 위해서는 할 말도 다 못하고 그저 “다 내 잘못이다”라고 하신 아버지의 그 묵묵함이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 있다.
“대통령님 욕먹지 마세요. 할 말 다하지 마시고요.”
아버지가 된 지금 대통령님께 하고 싶은 말이다.
대통령은 외로우신 분이다. 그동안 그 분의 삶이 그랬다. 소수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으며, 지역주의를 타파해보겠다고 모두가 만류하는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자신의 원칙과 소신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비주류에서 주류가 되었지만,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갔고 대통령직에 정을 붙이지 못하시는 것 같다. 더욱이 언론계, 법조계, 보수단체 등의 득세로 기를 필수 없으니 마음을 터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친구는 인터넷뿐일 것이다.
‘코드인사’라는 여론을 무시하며 자신이 발탁해 기용했던 전 국무위원들에게 “실패한 인사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그래선 안 된다”, “꿀리지 않는다”, “썩는다” 등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을 사용하신다. 대통령 또한 이 땅의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각종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의 참패에도, 국정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내려가도,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서민들의 삶이 궁핍해지고 우리 경제의 앞날이 어두워도, 모든 일이 잘되고 있는데 매사에 발목을 잡는 야당이 문제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언론이 문제라고 생각하신다. 오로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전국정당의 재창출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통령의 사고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난 그런 대통령이 밉다. 대통령의 전국정당 자랑은 지방선거의 참패로 공염불이 되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동네북으로 전락한 대통령이 창피하다. 각종 행사장에 나갈 때마다 주민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지역행사에 참여하기가 두려울 때도 많다.
처음엔 나도 “우리 대통령 그런 사람 아니다. 대통령이 말실수 한 것 빼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는 것이냐? 깨끗한 정치를 이루어 냈고, 권력기관을 제자리에 갖다놓았으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일정 수준의 성과를 올린 측면이 있지 않은가?”라며 설득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돌아온 것은 눈덩이처럼 커진 불신과 증오뿐이었다. 결국 모든 화살은 대통령과 우리당에게 돌아왔다.
동지들의 평화를 위해 내가 대통령께 드릴 수 있는 말은,
“대통령님 제발 욕먹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 다하지 마시고 묵묵히 외로움을 견뎌 내십시오”
“마음에 거슬리는 말 들어도 다 내 잘못이다 하십시오”이다.
대통령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는 분노와 격정을 천천히 삭혀나갔으면 좋겠다.
난 대통령의 외로움을 잘 모른다. 그 외로움을 견뎌내는 방법은 더욱 모른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대통령의 그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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