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과 만남

한나라당 진 영 의원

시민일보

| 2007-01-09 19:15:49

나는 몇 년 전에 읽었던 한 권의 책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제목이나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용 곳곳에서 나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이런 내용의 책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에 살고 있던 한 젊은이가 어머니에게 “한 사흘만 피난 갔다 오겠다!”고 말하면서 집을 나온 것이 어언 반세기 동안 흩어져 살게 되었고 결국 영이별이 되었음을 눈물로 적어놓은 것이다. 그때 그 젊은이는 이제 백발의 노인으로 변했지만 포성이 울렸던 그날 우물가 마당에서 아들의 피난 봇짐을 챙겨주신 중년부인의 어머니는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30년을 거의 두 번이나 지샌 그 무정한 세월의 여한 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오직 하나, 그날의 어머니 곁에서 한치도 떠나지 못했음을 토로해 놓았다. 3일의 여정이 영원한 이별이 된 그 노인의 회한에서 눈물이 짙게 밴 통곡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픔이 뒤섞인 분노감으로 그 책을 읽어야 했다.

무엇이 그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놓았는가! 누가 그들의 이별을 기정사실화했으며 그 때문에 누가 이득을 보았을까? 분단으로, 전쟁으로 이득을 본 사람이 있었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어느 집단이었을까? 바로 그 분단으로, 그 전쟁으로 형제끼리 서로 총을 겨누어야 했고, 온 가족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이산가족이라는 슬픔을 겪어야 했으며, 수많은 영혼들이 이름 모를 산야에서 혼백으로 떠돌아야 했다. 전쟁고아들은 세계의 곳곳에 입양되어 평생을 고통의 세월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은 참 이상해서 오히려 그 전쟁을 일으켰던 장본인들과 그 자식들이 그 뒤에도 더 큰소리치고 군림하는 세월이 되었으니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된다.

나는 요즈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장면을 보면 헤어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 간에 너무 오랜 세월 헤어져 살아야 했기에 서로의 그리움을 접어야 했고, 그러다 어느 날 이산가족 상봉의 이름으로 서로 만나게 되었지만 잠깐의 만남만으로도 서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부모, 형제의 그리움으로 눈물 젖는 이야기에 목이 메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체제의 두 현실에서 살아온 서로가 놀랄 뿐이다. 나는 서로가 서먹서먹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그 진한 가족애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우리 모두가 통일을 말하면서도 점점 통일과는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그리고 통일과 무관하게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 세상에 가장 큰 비극의 하나는 헤어진 부모 형제나 친구들이 자유롭게 서로를 만나지 못하는 일이다. 누구 때문에 우리는 부모와 형제를 못 만나고 이처럼 헤어진 채 살아야 하는가? 우리 자신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정치적 계산이 이렇게 만들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산가족의 아픔과 생이별의 절망감만이 분단의 피해로 남게 되었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이고 민족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난날 민족을 말하고 자유를 주장하면서 나라를 반으로 갈랐고, 서로를 적으로 몰아서 싸움을 치러야 했던 그 일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역사로 남아 있다. 민족 통일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때로는 계급혁명을 주장하면서 같은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그 남침이야말로 어떤 명분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반민족적 행위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세월의 힘으로 지난날의 앙금도 씻어야 한다. 그날의 기억으로만 살아간다면 미래도 없고 발전도 이룰 수 없다. 그날의 악몽 같은 과거를 잊고 함께 손잡아야 하는 현재의 당면과제는 너무나 절실하다. 그러기에 나는 슬픔은 과거의 일이고 오늘과 내일은 민족의 기쁨의 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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