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을 하던가…
정 청 래(열린우리당 의원)
시민일보
| 2007-01-21 15:25:35
{ILINK:1}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시골 출신인 나는 어릴 적 동네잔치가 있는 날이면 으레 어머니가 근무(?)하셨던 광이나 곳간을 어슬렁거렸던 기억이 있다. 동네잔치 음식이 이곳에서 한상 차려져 멍석이 깔린 손님들에게 향한다. 그 길목을 지켜서 있다보면 어머니가 슬쩍 슬쩍 인절미나 부침개를 한 볼퉁이씩 주시곤 했다. 손이 큰 동네 아주머니가 내 또래 아이들에게는 가장 인기가 높았다.
곳간과 광이 사람들에게만 인기가 높은 장소는 아니었다. 이 곳에 있는 가마니와 광주리 등은 항상 쥐들이 쪼아대서 구멍이 나기 일쑤였다. 흙으로 만든 토담집 곳간은 아예 쥐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곤 했다. 쥐들도 먹거리가 어디에 있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쥐들은 밤새 포식을 하고 어머니들은 아침밥을 지으러 곳간의 문을 열면 쏜살같이 도망을 가는데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어머니들이 많았다.
열린우리당의 곳간에 쌓여있던 쌀이 바닥이 났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인심이 좋을 리 없다. 이제 바닥을 드러내고 곳간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쌀만 바닥이 난 것이 아니라 인간성도 바닥을 드러냈다. 곳간에 쌀이 떨어지면 사람도 쥐들도 이 곳을 찾지 않는다. 문제는 쥐들이다. 쥐들은 새로운 곳간을 향해 돌진하며 벽을 뚫고 광주리를 뚫는다. 밤새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집 저집 곳간을 찾아 헤맨다. 배가 난파하면 제일 먼저 쥐들이 그 낌새를 알아차린다고 했던가?
열린우리당 신세가 쌀 떨어진 곳간 신세다. 그동안 열린우리당 곳간에서 쌀을 먹던 사람들은 저마다 곳간을 찾아 떠나려 한다. 쌀이 떨어졌으면 쌀을 채우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열린우리당 곳간을 고칠 생각, 쌀을 채우려는 생각, 떠난 민심을 잡으려는 노력은 이제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저마다 집문서를 들고 기자들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야단 법석 시끌벅적하다. 기사에 한줄 이름나오는 것이 그리 좋은가? 정말 그리 좋은가?
열린우리당의 곳간의 쌀은 총선공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었다. 개혁이었다. 그것을 복기해서 다시 그 약속을 실천해야 한다. 아파트 분양원가공개를 제때 하지 못해 죄송하다. 그것을 제대로 하겠다.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서민주택 300만호의 주거 개선을 약속했는데 실천하지 못해 죄송하다. 그것을 제대로 하겠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약속해 놓고 못했다. 죄송하다. 그것을 하겠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일관해 비정규직 문제를 제때 제대로 못 풀었다. 죄송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세금으로 부동산을 잡겠다는 발상이 잘못되었다. 반성한다. 반성도 제대로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열린우리당 곳간을 버리고 새로운 곳간을 찾았으면 ‘고 건이 새 곳간이다.’라고 외쳐야 하거늘 주변만 빙빙 돌뿐 이름을 건 국회의원이 없었다고 한다. 탈당을 하지도 않고 ‘고건지지’라는 깃발을 들지도 않는 상황이었으니 고 건 전 총리로서도 참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론지지도 계속 낮아지고 가시적 지지를 밝히지도 않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보며 고 전 총리는 정치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라 했던가? 그런데 절이 싫다며 떠난다고 했던 중들도 그저 뭉개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당을 깰 힘도 없다는 조롱을 들어 마땅하다. 탈당을 예고했던 사람은 언제까지 예고만하고 당이 당이 아닌 우스운 꼴로 만들지 참 답답하다. 나는 차라리 기왕 탈당을 말했으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탈당을 하려면 탈당원서를 접수하고 탈당을 말해야지 ‘탈당 예고제’는 어디서 나온 제도인지 모르겠다.
탈당을 하려는 자 만류해서 될 리도 만무하고 고 건 찾아 삼천리 손학규 찾아 삼천리를 외치는 국회의원님들 말릴 도리도 없다. 손학규씨가 개인적으로 훌륭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는 다른 당 예비주자이다. 같은 당이 아니란 말이다. 다른 당 대통령후보를 다른 당에서 지지하는 일만은 제발 하지 말자. 다른 국회의원들을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누워서 뱉은 침에 얼굴이 덮여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다.
손학규를 지지하면 탈당하고 손학규 캠프에 합류하는 것이 정치인의 솔직담백한 태도다. 아니면 정치적 매춘행위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남의 당 사람들에게 군침이 도는 의원님들 참고하기 바란다. 이런 분들 때문에 한나라당에게 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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