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열강들의 외교
이노근(노원구청장)
시민일보
| 2007-03-04 19:10:16
우리 일행은 소주방 공부를 그렇게 마치고 서둘러 향원정으로 향했다.
전방시야를 장악하고 있는 팔각정자 향원정(香遠亭)은 그 자태와 미감이 고궁의 향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정자로 가는 도중 불쑥 두 동(棟)의 건물이 시야를 괴롭히는 게 아닌가!
그것이 건청궁(乾淸宮)의 편전 ‘함화당(咸和堂)과 집경당(緝敬堂)’이다.
먼저 그 당집의 이력을 좀 알아볼 터이다.
“두 당집은 고종 때 그러니까 1867년 경복궁 중건(重建)계획에 따라 지어 졌어요… 그때 함화당·집경당·흥복전·광원당·다경각·영훈당 등 여러 전각을 지었어요… 불행히도 여타 전각은 일제강점기에 모조리 훼철(毁撤)됐어요… 그런데 유독 함화당과 집경당이 철거(撤去)를 면했는데 그 이유가 아이러니(irony)하지요… 당시 조선총독부가 두 당집을 사용했기 때문 이래요… 일제의 침탈(侵奪)에 부역(附逆)한 건물은 오히려 살아남았으니….”
“고종황제는 두 건물을 외교관 접견실(接見室)로… 그 당시 서구열강들은 어떻게 하면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을까 궁리를 했어요… 그때 서구열강들은 경쟁적으로 고종에 접근을 하였지요… 고종은 바로 이곳에서 그들과 힘겨운 협상(協商)을 벌린 거지요.”
잠시 고종실록을 뒤져 그 증거목록(證據目錄)을 두어 편 예시(例示)를 하여 볼 터이다.
‘고종 29년 7월25일 집경당(緝敬堂)에서 일본공사 미산정개(楣山鼎介), 미국공사 알렌, 영국공사 카아, 프랑스 공사 계랭, 독일공사 랜수돌두, 러시아공사 메트리부스카들을 접견하다.’
그중 미국공사 ‘알렌’은 국정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이다. 대관절 그는 누구이더냐?
“그는 무려 20여 년간 미국 공사관에서 일을 봤어요… 그는 조선의 정치·경제·의료·선교 등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사실 고종은 두 당집에서 ‘알렌’을 자주 알현하는 등 각별한 배려를 하였다. ‘알렌’은 잘 알다시피 고종의 배려로 양방병원 ‘제중원(濟衆院)’을 설립했고 미국회사가 경인선(京仁線) 철도부설권을 따는데도 막후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알렌은 처음 조선정부와 어떤 인연으로 만났을까?
두 사람의 인연(因緣)을 알려면 1884년 갑신정변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박영효·김옥균 등 개화파들이 그 해 12월 4일 우정총국 낙성식장에서 정변(政變)을 일으켰지요… 그때 민영익이 낙성식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중상을 입은 거지요… 그때 마침 양의(洋醫) ‘알렌’이 나타나 출혈을 멈추게 한거죠…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생명을 구했지요.”
여하튼 그런 조선정부와의 인연으로 고종황제를 수시로 알현(謁見)하며 정치에 자문을 해줬는데 그 곳이 바로 두 당집이었다.
차제에 이 우학(愚學)은 두 당집의 사적(史的) 가치를 보태기 위해 조선말 외교비사(外交秘事) 하나를 더 추가할 터이다.
공개할 목록은 ‘조선정부개혁안(朝鮮政府改革案) 20개 조목(條目)’이다. 고종 31년 10월23일 함화당(咸和堂)에서 일본공사 정상형(井上馨:이노우에 가오루)을 접견하였을 때의 일이다.
이때 일본공사가 고종에게 개혁안 20개 조목을 들이댔다.
‘1. 정권(政權)은 모두 한 곳에서 나오게 하여야 한다… 3. 왕실의 사무는 나라의 정사(政事)와 분리(分離)해야 한다… 5. 의정부(議政府)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정해야 한다… 7. 왕실과 각 아문(衙門)의 비용을 미리 정해야 한다… 20. 국시(國是)는 일단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히 일본공사(日本公使) 따위가 어떻게 고종황제 면전에서 그렇게 무도 방자한 협박 문서를 들이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형식은 건의(建議)이나 실상은 압력이 틀림없다.
그 협박사건의 현장이 바로 함화당(咸和堂)이라는 것을 안다면 아마 당신의 발걸음도 그 곳에서 멈춰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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