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1)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3-06 16:53:49

런던에서 기차로 북쪽으로 그저 북쪽으로 달려 앉아있기가 지루해질 무렵, 중부 잉글랜드의 그랜덤(Grantham) 역에 도착한다. 역전에는 상점도 없고 택시조차 머물지 않는다. 내리는 손님도 별로 없다. 한산한 분위기는 이 거리가 한창 번화했다가 몰락한 쓸쓸함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의 철도 역에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는 것과 중심에서 떨어진 교외라고도 할만한 곳에 만들어진 것이 있다. 맹렬한 기세로 연기를 토하고 굉음을 울리며 나아가는 기차에서 신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도시와, 이를 두려워하여 멀리 밀어내려고 한 사람들과의 차이일 것이다. 새로운 사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진취의 정신과, 새로움에 대해본능적으로 반발하는 보수성의 차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된다.

그랜덤 거리의 사람들은 후자에 속하고 있었다. 칙칙한 벽돌 색깔의 역사를 보고 있으면 철도가 깔린 당시 사람들의 보수적인 목소리가 메아리 쳐서 들려올 것 같기도 하다.

여기가 보수당의 리더 마가렛 대처가 태어난 곳이다.

노스 퍼레이드(North Parade) 1번지, 시 중심가에서약간 벗어난 부근에 벽돌로지은 3층짜리 긴 건물이 조용히 서있다. 벽돌 색깔임에는 틀림없으나 진하고 연한 게 얼룩덜룩한 것은 몇 번이나 수선했기 때문이다. 쇼윈도가 튀어나와 있고 안에는 통조림캔이 쌓여 있다. 얼른 보아 식료품상점 같다. 그러나 창문 위에 ‘수상(The Premier)’이라 크게 쓰인 점포 이름이 있고 그 위에 ‘레스토랑’ 간판이 있는 걸 보니, 통조림 캔은 아무래도 인테리어의 일부인 듯하다. 이 식료품 상점으로 잘못 볼 정도의 레스토랑이야말로 대처의 아버지 알프렛 로버트가 경영하던 식품 잡화점이고, 영국 역사상 첫 여성 수상 마가렛 대처가 태어나서 자란 집이었다.

대처가 수상이 되고 나서 눈치가 빠른 사람이 이 집을 사서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것이다. 게다가 식품 잡화점이었던 것을 보여주는 장식을 하고 점포 이름도 ‘수상’이라 했다.

쇼윈도 사이의 빨간 도어를 밀고 들어가면 먼저 진열대가 눈에 들어온다. 진열대에는 오래된 라벨의홍차, 통조림 캔, 분말 수프, 비누 등이 진열되어있고, 전에 돈을 넣고 꺼내던 소형 금고가 놓여 있다. 자못 예전의 식품 잡화점에 발을들여놓은 느낌이 든다.

손님을 맞이하는 여성 두 명도 웨이트리스라기보다 식료품 점포의 여점원 비슷한 복장이다. 게다가 한 명은 대처가 애용하는 로열 블루 색깔의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오래된 식료품을 늘어놓은 대기 공간에서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가면 레스토랑이다. 짙은 녹색과 목탄 색 꽃무늬 의자와 세월이배어든 떡갈나무 테이블, 조용한 색조와 역사가 배어들게 한 분위기는 가능한 한 당시에 접근하고자 하는 경영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영국 역사를 바꾸게되는 여성이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대처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고향에는거의 돌아오지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이 사망하고 나서는 전혀 들르지않게 되었다.

물론 그랜덤 시의 고급 레스토랑 ‘수상’에서 식사한 적도 없다. 마치 자신의 출신지를 몹시 싫어한 듯하다. 식품 잡화상의 딸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하고 예전의 출신 계급이 떠오르게 하는 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처라는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랜덤 시 노스 퍼레이드 1번지를 알아야 한다. 이 땅에야말로 대처를 신념의 정치가로 기르고 영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장기 정권을 수립한 여성 수상의 원천이 있기 때문이다.

대처의 아버지 알프렛 로버트는 노샘프턴(Northampton) 주 링스테드(Ringsted)의 구둣방 아들로 태어났다. 일곱 형제의 장남이었던 그는 ‘대장장이의 아들은 대장장이’ ‘농부의 아들은 농부’로 정해져 있었던 당시의 풍조로 보면 당연히 구둣방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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