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3)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3-08 16:24:27

외할머니의 삶의 방식은 도덕적으로 엄격한 빅토리아 시대 중산계급의 전형이었다. 열심히 일하고 집을 깨끗이 정리하며, 안식일인 일요일에는 빼먹지 않고 교회에 다닌다. 이 외할머니 밑에서 마가렛과 언니 뮤리엘은 일요일에 놀았다는 기억이 없다. 외할머니는 하느님에게 기도하기 위한 안식일인 일요일에는 재봉하는 것조차 금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아이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4번이나 다녀야 했다. 먼저 아침 식사 후에 가까운 교회의 일요학교에 간다. 일단 귀가하고 나서 다음에는 외할머니, 양친과 함께 오전 예배에 간다. 점식을 먹은 후 다시 일요학교에 갔다가 저녁에는 재차 예배를 하러 교회를 찾아간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일가는 열렬한 그리스도교도였다.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계급은 하느님의 가호 하에 근면하게 일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보았다. 일함으로써 하느님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근대 자본주의를 뒷받침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가 거기에 있었다. 마가렛에게는 일요일 이외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다는 기억이 없다. 평일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중 한쪽은 점포에 나가 있었으며, 아버지는 점포 이외에 시의회 의원으로서도 바빴다.

이런 근면함, 옆에서 보기에는 강박 관념에 쫓기고 있는 것 같이도 보이는 일하는 스타일을 마가렛은 확실히 이어받았다. 특히 어머니를 우러러보며 자란 것은 마가렛의 인생을 결정지었다.

어머니는 일하는 한편으로 주 2회 가족을 위해 빵을 굽고 삯바느질을 하던 솜씨를 살려 아이들의 옷 전부를 자기 손으로 만들었다. 어머니가 주부로서뿐만 아니라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던 모습은 마가렛이 성장하여 전업주부 따위는 논외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지를 만들었다.

마가렛은 또 아버지의 뒷모습을 존경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중에 남자 이상으로 계속 일하는 마가렛은 빅토리아 시대의 성실하고 정직한 중산계급 출신자를 판에 박은 듯한 아버지의 근면함을 자기 내부의 에너지로 바꾸어갔다. 그녀는 노동의 가치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피부로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로버트 가는 부부의 근면함으로 생긴 자금으로 옆집인 노스 퍼레이드 3번지를 구입하고, 이어서 그 옆의 5번지도 구입하여 점포를 넓혔으며, 또 시내에 점포를 한 군데 더 열었다. 이렇게 중산계급의 아래층에서 중산계급의 한가운데로 껑충 뛰어올랐다.

재산이 생기면 정치에 손대고 싶어지는 것이 세상사이다. 알프렛도 예외가 아니어서 정치의 세계에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이것은 그의 평범함을 말해주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처음으로 시의회 의원 선거에 나섰을 때, 현지 상공회의소의 추천 후보이면서 무소속이었다. 당시 상공회의소의 멤버로 의원이 되는 자의 대부분은 보수당에서 입후보했다. 그 편이 유력자로 가는 길도 열려 권력에 다가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권력과는 한 걸음 떨어져 있었다. 시세의 흐름에 거슬러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는, 딸 마가렛에서 볼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이미 아버지의 정치 자세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알프렛에게는 식품 잡화점 경영자로서의 확고한 평가, 장신이며 단정한 용모, 게다가 교회에서 목사 대리까지 한 적이 있는 연설 솜씨가 있었다. 일요일이면 목사를 대신하여 가까운 교구에 나가 복음을 설파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말이나 이륜 경 마차로 나갔으나, 나중에는 교회에서 택시 대금을 지불하는 정도까지 되었다. 메모도 없이 장시간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이 자질을 차녀 마가렛이 이어받았다. 마가렛은 의회의 질문, 수상 답변, 당 대회의 연설 등에서 메모를 보지 않고 자세한 숫자를 들어 주장을 전개하여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는데, 이 탁월한 능력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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