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싯다르타에게서 물의 정신을 배워라

김정기(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3-08 16:25:08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中人之所惡/ 故幾於道矣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머문다./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다.

노자의 에 나오는 이 구절이 좋다. 나는 언제나 물이 좋았다.

섬 마을에서 자란 까닭인가? 어린 시절에는 낚시하고 수영하는 재미에 여름이면 늘 바닷가에 나가 살다시피 했다. 날씨가 추워져 물 속에 들어갈 수 없을 때에는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탁 트이는 듯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흐르는 물을 보거나 물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노자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上善若水라는 이 구절이 특히 내 마음에 들어왔을 것이다.

범인인 나도 물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는데 하물며 성인인 노자가 2500년 전 물 속에서 도(道)를 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전체를 통하여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일인지를 스스로 고백한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고/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이미 이름이 아니다.

그러한 노자가 물에서 도의 모습을 보았다. 허다한 사물 가운데 하필이면 왜 물이었을까? 하늘에, 땅에 구름에 또는 부는 바람에 도의 모습을 비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자는 물을 들어 도를 비유했다. 예수가 포도밭을 들어 천국을 비유했듯이 정신의 궁극에 이른 성현들로서는 비유 말고 달리 그 실체를 들어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노자의 물은 우선 상선(上善)으로 표현된다. 물의 속성 가운데서 특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는 점에 주목했다. 춥고 음습한 곳, 낮고 어두운 곳,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런 데에 기꺼이 머문다.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며 당장 배부르고 영광된 것보다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곳에 처해 즐거워한다. 물이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은 곧 도의 속성이 물의 속성에 가깝다는 말이다.

물에서 도를 찾으려 한 사람이 어찌 노자뿐이겠는가. 세월을 넘어 근세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도 동양 정신의 정소인 불교에 매료되어 그것을 작품으로 형상화하려 고심하다가 문득 ‘물’을 만난다. 물을 가지고 불교의 정신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것이 라는 소설이다.

에서 헤세는 ‘위 없는 진리’를 찾아 고행을 떠난 싯다르타가 인생 유전을 맛본 후에 마지막으로 뱃사공이 되어 나그네들을 건네주면서 소박한 진리를 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강물을 보시오. 흐르는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오.”

늙은 뱃사공은 말한다.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언제나 같은 얼굴을 지닌 물, 언제나 같으면서도 한 번도 똑같지 않은 물, 이것이 개체와 전체의 관계이다. 개체와 전체가 하나이고 주관과 객관의 벽이 무너진 모습을 강물에서 본 것이다. 그 자리가 곧 깨달음이고 부처의 세계이다. 헤세는 어설프게나마 불교를 그런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가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으로 불교를 이해했든 아니든 흐르는 물에서 진리를 설명하려 한 그 착안에 나는 헤세를 좋아한다.

물의 속성, 물의 양태, 물의 변화만 가지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면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나는 물의 그 많은 성질 중에서도 베풀되 뒤돌아보지 않는 점이 가장 좋다. 물은 어느 곳이든 흐르고, 어느 곳이든 스며들어 생명을 낳고 풍요롭게 한다. 쉽지는 않지만 나는 생활 속에서 이런 물의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성공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언제든 먼저 다른 사람에게 크든 작든 정성을 다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행한 착한 일을 자꾸 생각하며 행여라도 이타심 뒤에 작은 자기만족의 함정이 빠지지 말 일이다. 세상을 이롭게 할 마음을 그렇게 놓아 보내니 그것으로 세상은 절로절로 이로워진다고 믿을 일이다. 이것은 물론 나와 너,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허물어야만 가능할 터이다. 마치 노자의 물처럼, 그리고 싯다르타의 물처럼.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