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이 아닌 바다를 보여주는 교육이 필요한 때다

김 정 기 (중국북경대학 연구교수)

시민일보

| 2007-03-12 20:08:39

오늘을 사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져야 할 교육인식이 필요할 때다. 그 중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우물이 아닌 바다를 보여줄 교육적 필요를 느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인류가 이천 년의 역사를 통해 터득한 몇 가지 중요한 진리가 있다. 첫째는 한두 사람의 결정보다는 다수의 결정이 유효하다는 것(민주주의), 시장은 관리보다 유효하다는 것(자본주의), 그리고 타율보다 자율적인 동기 부여가 인간이라는 동물을 고양시키는 첩경이라는 것 등이다. 이 세 번째 진리를 교육에 대입하면 대답은 저절로 나온다. 공부는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하는 것이다. 부모가 억지로 이끌면 백전백패라는 평범한 사실에 준한 경험칙이 서 있는데도 오늘을 사는 부모들은 ‘내 아이는 내가 만든다.’는 허망한 신기루를 쫓아 오늘도 목숨을 걸고 있다. 지구상 유독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이다.

인생은 어머니 탯줄에서 떨어져 나온 그 순간부터 부모의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의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무슨 증거가 필요할까? 그런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사례들을 찾으러 눈을 밖으로 돌릴 필요가 없다. 바로 한국의 중 장년 부모들 자신이 그런 실패한 인생의 산 증인들이기 때문이다.

그 부모들은 지금 하나 또는 많아야 둘 정도인 제 자식의 공부에 전력을 투입할 작정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방법, 부모가 다하지 못한 ‘성공’에 이르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자식의 공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을 건 투쟁은 과녁을 잘못 잡았거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백전백패의 결과가 뻔히 보인다.

반세기 전만 해도 사정이 지금보다는 나았다. 일본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식민 정책에 수탈당하고,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나라가 불과 반세기 만에 놀라운 경제 개발에 성공한 이유의 첫째 조건에 한국인이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못 먹고 헐벗어도 어떻게든 자식 공부는 시키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던 부모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라는 나라가 버젓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때의 부모들은 다행하게도(?) 무식했다.
뼈 빠지게 일하여 자식의 등록금만 대면 그만이지 그 자식이 학교 가서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간섭하지 못했다.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자식들 스스로의 몫이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 다음 세대인 요즘 아이들의 모습은 어떤가. 부모가 하루 일과를 빈틈없이 짜고, 학교와 학원을 선택하고, 과제를 체크한다. 무슨 공부를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분초 단위로 계산하여 함께 행동한다. 엄마가 없으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또한 친구와의 교우관계도 판단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아이들은 이렇게 알고 있다.

“공부는 부모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흉내만 내면 된다.”
결국 학습 결과에 대한 책임도 부모의 것이다. 아이들에게 ‘내 인생’은 없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 ‘내 인생’을 찾을 무렵에는 이미 실패한 인생이 돼 있다. 어떨지 모르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날 한국이 과연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인가?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이를 아파트와 학원, 그리고 유치원과 학교 담장 너머에 있는 무한한 세계로 달려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풀포기 하나,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 조각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부모의 삶 자체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도 공부이고, 휴일이면 목적을 정하여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공부이며, 호랑이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리듯 아이 혼자 많은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은 가장 좋은 공부다. 아이들에겐 우물보다 더 큰 바다를 보여주려는 부모의 의지가 올바른 성장의 바탕이 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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