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고도(古都)로 (4)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3-20 15:32:45
신입생의 대부분은 우선 그런 분위기에 압도된다. 시골 도시에서 처음으로 올라온 어린 소녀가 위축되어 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머빌 칼리지에 그녀를 찾아온 여학교 시절의 친구 마가렛 굿리치는 여학교 시절에는 발랄하고 에너지에 충만하던 마가렛이 의욕을 잃어버리고 의기소침해진 것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그때 마가렛은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난 기숙사 생활로 향수병에 걸려 있었다. 마가렛 자신이 당시를 뒤돌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는 고독 따위는 몰랐지요. 그건 첫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그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랬듯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스스로의 투지를 불러일으켜 회복했다. 이 여성에게는 역경의 크기에 반비례하여 그것에 반발하려는 힘이 커지는 장치가 몸 속에 들어있는 듯하다.
마가렛은 향수병을 사람들과 사귐으로써 해소하려고 결심했다. ‘바흐 합창단’, ‘과학협회’, ‘학생 메서디스트 그룹’, 나아가서는 ‘옥스퍼드 학생 보수협회’ 등 몇 개의 서클에 참가했다. 그녀는 이렇게 회고한다.
“‘보수 클럽(옥스퍼드 학생 보수협회)’에 들어간 건 그저 조금 흥미가 있었기 때문으로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그룹에 들어가든 다채로운 행사가 있었으며, 대부분의 학생들은 클럽 몇 개에 들어갔습니다. 저로서는 흥미 있었던 게 집안이나 경력이 전혀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이처럼 “그저 조금 흥미가 있을 뿐”이었던 옥스퍼드 학생 보수협회가 마가렛의 장래를 결정짓게 되는 것을 보면 세상사란 흥미로운 것이다.
당시 정치가를 지망하는 자의 대부분은 ‘옥스퍼드 유니언(학생연맹)’이라는 일종의 변론부에 가입하여 웅변술을 배웠다.
영국의 정치가에게는 웅변은 정치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정치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유니언’을 정치가로 가는 등용문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에 의해 어떻게 상대방을 압도할 것인가를 훈련했던 것이다. 옥스퍼드 유니언 출신의 멤버에는 글래드스턴(Gladstone), 애스키스(Asquith), 솔즈베리(Salisbury), 맥밀런(McMillan), 윌슨(Wilson), 히스 등 역대 수상이 줄을 잇고 있다. 영국에서는 정치는 바로 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유니언’은 여성의 가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차별 의식이 농후하게 남아있었던 1940년대의 일이다. ‘유니언’ 가입이 무리라는 걸 알게 된 마가렛은 어쩔 수 없이 마찬가지로 토론에 의해 사람을 단련하는 ‘학생보수협회’에 가입했다. 보수협회는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보수적 학생의 모임이어서 보수당의 학생 지부와 같았다.
대처가 보수협회에 들어가서 보수당의 청년부와 같은 활동을 하고 보수당 의원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녀는 보수당을 선택했을까? 첫째로는 아버지 주위에 모인 정치적인 사람들의 대부분이 보수당원이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아버지는 무소속 시의회 의원이었으나 사귀는 사람들 중에는 보수당원이 많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처칠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처칠은 내각 내의 소수파이면서도 반 나치의 신념으로 내각과 국가를 하나로 묶어 독일과 싸워서 마침내 승리했다. “영국은 풀뿌리 하나까지 끝끝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라고 부르짖어 국민을 단결시켰다. 이러한 탁월한 사나이의 리더십에 정치를 꿈꾸는 소녀가 마음이 끌리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대처는 처칠처럼 유머와 독설과 신념으로 국민을 통합해내는 정치적 천재는 아니었으나, 처칠을 정치의 스승, 나아가서는 자신보다 한층 위의 존재로 우러러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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