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고도(古都)로 (5)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3-21 18:12:52

처칠은 대처와는 이질적인 존재이며, 정치가로서 인간으로서의 그릇도 대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대처는 처칠을 동경했다. 대처가 처칠을 외경하는 마음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마가렛의 대학 입학 직후의 행동에는 다른 학생과 두드러지게 다른 두 가지 면을 찾아낼 수 있다. 첫 번째는 화학을 전공하고 보수협회에 참가함으로써 남자의 영역에 파고든 점이다. 그 후 그녀는 늘 남자의 영역을 침범하게 된다.

두 번째는 화학, 보수협회라는 별로 유행하지도 않는 학문, 인기 없는 분야를 굳이 선택했다는 점이다. 화학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졌다고 간주되었으며, 자유주의나 좌익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그 때 보수당 산하의 보수협회에 가입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았다. 인기 없는 일이라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대응해 가겠다는 정치가 대처의 원형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남자의 분야에 주저 없이 진출하는 태도는 정치가가 되고 나서도 바뀌지 않았다. 이 두 가지 특질을 가진 마가렛은 역시 특이한 학생이라 할 수 있었다.

성실 그 자체인 학생 마가렛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매일 밤 뒤적이면서 튜터(Tutor)가 내준 에세이 숙제를 열심히 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특징의 하나는 튜터리얼(Tutorial) 제도이다.

이것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튜터라 부르는 개인지도 교사가 붙는 시스템으로, 튜터는 학생이 전공하는 과목의 전문가 중에서 선택된다. 학생 쪽에서 교사를 지명할 수도 있었으나, 사정에 어두운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학 측에서 튜터를 지정해 주기도 한다. 학생은 매주 또는 격주에 1회씩 튜터와 만나 의논하여 조언을 받는다. 대개는 열 몇 권의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그것을 튜터가 고치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강의나 세미나도 있었으나, 그와는 별도로 1대 1의 학문적 지도가 실시되었던 것이다. 옥스퍼드의 학문적 수준이 높은 것은 오로지 이 튜터리얼 제도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튜터리얼에서 문과계 학생이 하는 일은 책을 단시간 동안에 읽어 줄거리를 파악하고, 인용할 수 있는 곳을 잡아 내며 또 독자적인 발상을 가미하여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스피드와 명석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남의 생각을 교묘하게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화학 전공인 마가렛으로서는 실험이 공부의 태반을 차지했다. 낮에는 실험을 하고 밤에는 그것을 정리하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 때문에 종종 오전 2시, 3시까지 책상과 마주하게 된다. 게다가 다음날에는 오전 6시 반이나 7시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하였다.

이상하게도 마가렛은 하루에 4시간밖에 자지 않아도 낮에 졸음이 오지 않았다. 수상이 되고 나서도 매일 밤 오전 2시나 3시까지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반드시 오전 6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5시간 이상 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생시절부터 적은 수면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수면 시간은 3시간이었다는 전설이 남아있으나, 대처도 나폴레옹에게는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면 시간 4, 5시간이라는 경이적인 체질이었다.

한 시대의 획을 긋는 사람은 체력적으로도 비상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일까? 대처는 나폴레옹과 같은 세계사적 존재는 아니지만, 영국의 2차 대전 후 역사에서 하나의 획기적 시대를 만들어냈으며, 그 중에서도 세계의 여성사를 바꾸어 썼다는 점에서 역사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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