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고도(古都)로 (6)
정인봉(변호사) 譯
시민일보
| 2007-03-22 16:36:21
적은 수면으로 충분했다는 점에서는 천재적이었으나, 그녀는 학업이나 행동 양식에서는 결코 천재는 아니었다. 강의시간에 늦거나 에세이 제출 기일에 늦은 적도 없다. 천재는 그런 행동 양식, 발상 형태에서 반드시 무엇인가 번뜩임을 보이는 법이다. 노력 없이 재능이 꽃을 피우지는 않지만 노력만으로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그녀는 남의 몇 배나 노력했으나 천재가 보여주는 그 번뜩임은 없었다.
그녀의 지도 교사인 튜터로 나중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도로시 호지킨(Dorothy Mary Crowfoot Hodgkin) 교수는 마가렛에게 번뜩임이 없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여 그것이 불만이었다. 마가렛의 능력이라면 좀더 성과가 올라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가렛은 수재이긴 했으나 천재는 아니었다. 그대로 대학에 남아 화학 연구를 계속했다면 보통의 학자는 될 수 있었을 것이나 초일류 학자, 독창력을 평가 받는 노벨상 학자에까지 이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가렛은 여성만의 칼리지, 서머빌에서 인기가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단자 취급을 받았던 편이다.
정치가가 되고 나서도 여성보다 오히려 남성의 지지를 많이 받았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체질은 학생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마가렛은 옥스퍼드에 와서 처음으로 사랑을 했다. 상대는 같은 대학생으로 보수적인 서클에 있던 백작 가의 아들이었다. 아련한 사랑을 의식한 그녀는 서머빌 칼리지의 동료에게 그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이것도 직선적인 어투라서 역시 동료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첫사랑은 그녀가 백작 가를 방문하여 백작 부인에게 소개된 직후에 끝나고 말았다. 백작부인이 무엇을 말하고 마가렛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일체 밝혀지지 않았다. 세 명의 당사자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백작부인은 하층계급 출신인 마가렛에게 장래 백작부인으로는 될 수 없다고 넌지시 말했던 게 아닐까? 식품 잡화상의 딸이 아무리 출세한다 하더라도 상류계급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라고 태도로써 주눅들게 하였던 것은 아닐까?
직관력이 뛰어나고 자부심이 강한 마가렛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온갖 장애도 태워 없앨 정도의 정열이 있었다면, 계급의 차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로막는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정열의 불꽃은 더욱 타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에 몸과 마음을 전부 내던지는 타입의 여자가 아니었다. 정치에 대한, 권력에 대한 관심이 사랑의 정열보다 훨씬 더 강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몇 명인가 애인 비슷한 인물이 마가렛 주위에 있었다. 그 중 한 명에게서 카네이션 한 송이를 선물 받아 그녀는 꽃이 하루라도 오래 갔으면 하고 친구와 상의했다. 친구의 어머니에게서 아스피린을 넣은 물에 담그면 오래 간다고 들은 마가렛은 매우 기뻐했다. 이 ‘아스피린 실험’이 성공했을 때, 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퍼뜨려 또다시 따돌림을 받았다. 그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소녀 취향으로 사려 분별이 없었다. 모두 미숙한 플라토닉 러브였으며 물론 성적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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